안상호 친일 논란에 역사적 판정 기준 쟁점화
핵심 요약
심용환 소장은 명확한 부역 행위 없이 안상호를 친일파로 단정하는 판단을 경계했다.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활동한 기록은 하영 측도 확인했다. 심 소장은 친일 부역과 후손 책임의 범위를 가를 명확한 역사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의혹이 확산한 가운데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 명확한 부역 행위 없이 특정 단체 가입 기록만으로 친일파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심 소장은 지난 11일 SNS에서 고종 독살설은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풍문이지만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지 않는 암살설이라며, 당시 주치의였다는 이유로 안상호를 독살 주체나 친일파로 몰아가는 판단을 비판했다.
심 소장은 안상호가 엘리트였고 친일 인사들이 다수 참여한 대정친목회에 소속됐으며, 일본의 시정 홍보에 집안이 활용된 점을 들어 그의 말년을 존경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다만 구체적인 친일 부역 행위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체 경력만으로 친일파로 규정하면 비판과 기억의 기준이 흐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학자의 견해가 역사학계 전체의 판단처럼 받아들여지고 고종 독살설까지 사실로 굳어지면서 하영이 친일파 후손으로 낙인찍혔다고도 주장했다.
논란은 하영이 지난 7일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증조부가 일본 유학을 마친 뒤 한양에 최초의 서양식 병원을 열고 고종을 진료했다고 소개하면서 시작됐다. 하영 측은 처음에는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으나, 이후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등재된 기록을 확인했다고 추가로 입장을 냈다. 조선인 상류층으로 구성된 친일 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는 이완용이 고문을 맡았고 안상호는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동경 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자격증을 취득했으며, 1904년 귀국해 서울 종로3가에 개인 진료소를 마련하고 의료 활동을 했다. 심 소장은 하영이 가족사의 불편한 부분을 성찰하지 않은 점은 지적할 수 있지만 조상의 좋은 면만 기억하고 자랑하는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봤다. 또 후손의 범위와 책임에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며, 조상의 공과 과를 후손에게 돌리는 연좌식 판단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학계에는 선악의 단순한 판별을 넘어 정확한 기준으로 과거를 인식하게 할 책임이 있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