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에 깃든 단종의 슬픔…석양이 전하는 모정의 역사
핵심 요약
안산문화원에 전시된 석양은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 폐릉지 출토 유물이다. 단종은 즉위 2년 후 안산 소릉을 찾아 제사를 지냈으며, 세조가 소릉을 파헤친 후 관우물 전설이 전해진다. 안산은 단종 슬픔의 시작점으로, 지명과 전설에 역사가 남아 있다.

경기 안산시 상록구 안산문화원 야외전시장에는 돌로 만든 양 한 마리가 전시되어 있다. 이 석양은 조선 5대 임금 문종의 비이자 단종의 생모인 현덕왕후의 폐릉지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691만 관객을 동원하며 단종의 슬픔이 깃든 강원도 영월이 주목받았지만, 안산은 단종 슬픔의 시작점으로 평가된다.
현덕왕후는 세종 23년 원손인 단종을 낳고 산고 끝에 세상을 떠나 안산군 와리면 목내리에 능을 조성하고 소릉이라 불렀다. 단종은 즉위 2년 후인 1454년 어머니의 무덤이 있는 안산을 찾아 제사를 지냈으며, 이는 단종실록에 '임금이 소릉에 제사하다'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세조는 즉위 3년에 소릉을 파헤쳐 폐했고, 중종이 바닷가에 묻힌 유골을 찾아 동구릉에 문종의 능 옆에 안장했다.
안산의 지명은 여전히 단종의 행차와 소릉의 존재를 간직하고 있다. 소릉이 있던 자리는 '능안', 단종이 참배를 위해 지나가던 길은 '능길'로 불린다. 안산 반월공단 일진전기 정문 경비실 옆에는 '관우물지' 표지석이 남아 있다. 전설에 따르면 세조가 단종을 죽이려 할 때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 꾸짖었고, 이에 노한 세조가 관을 바다에 던졌다. 관은 소릉 옆 바닷가까지 떠밀려 왔으나 순박한 농부가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주었고, 그 자리에 우물이 생겨 '관우물'이라 불렸다.
이 이야기는 정사는 아니지만, 죽은 뒤에도 아들을 지키려는 모정과 권력에 분노한 민중의 저항을 보여준다. 안산문화원의 석양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방치된 관을 묻어준 농부와 관우물터 이야기, 그리고 어머니 무덤가에서 목놓아 우는 단종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