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 1호의 희생이 바꾼 달 착륙의 길
핵심 요약
AS-204 지상 시험 화재로 그리섬·화이트·채피가 목숨을 잃었다. 사고 조사를 거쳐 해치와 내장재, 산소 공급 방식 등 우주선 안전 설계가 전면 수정됐다. 아폴로 1호의 희생과 교훈은 아폴로 11호 달 착륙을 뒷받침했다.
1967년 1월 27일, 유인 우주선 AS-204의 지상 발사 리허설 도중 화재가 발생해 우주인 거스 그리섬, 에드워드 화이트, 로저 채피가 숨졌다. 로켓이 발사대에서 떠오르기도 전에 벌어진 이 사고는 아폴로 우주선의 구조와 시험 절차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세 사람이 맡았던 임무는 이후 ‘아폴로 1호’라는 이름으로 달 탐사 역사의 첫머리에 남았다.
화재는 피복이 벗겨진 전선에서 발생한 작은 불꽃으로 시작됐다. 선내에 나일론과 벨크로 등 가연성 재료가 널리 사용된 데다 높은 압력의 순수 산소가 채워져 불길이 급속히 번졌다. 내부 압력 때문에 안쪽으로 열리는 해치는 움직이지 않았고, 구조대가 문을 열었을 때 세 우주인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 최초의 외침부터 불길이 치솟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5초에 불과했다.
그리섬은 머큐리 계획부터 참여한 베테랑이었고, 화이트는 미국인 최초로 우주 유영에 성공했다. 채피는 첫 우주 비행을 준비하던 젊은 우주인이었다. 사고 뒤 미 항공우주국은 수만 쪽의 조사 보고서를 작성하고 배선과 나사, 스위치까지 다시 점검했다. 해치는 바깥쪽으로 신속하게 열리도록 재설계했고, 가연성 내장재와 우주복 소재를 교체했으며 지상 시험에는 순수 산소 대신 질소가 섞인 산소를 사용하도록 했다.
이 같은 수정은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뒷받침했다.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 표면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마이클 콜린스는 사령선 컬럼비아를 지키며 귀환을 준비했다. 달 착륙의 성과는 앞에 선 우주인뿐 아니라 임무를 지킨 사람들과 실패를 기록해 설계를 고친 과정이 함께 만든 결과였다. 아폴로 2호와 3호라는 비행 없이 다음 임무가 아폴로 4호로 이어진 것도 세 희생을 역사에서 지우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