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 사흘에 비친 화가의 내면 풍경
핵심 요약
화가 수연이 아시시에서 보낸 사흘을 풍경과 감정이 살아 있는 문장으로 그렸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부산 영도의 기억을 통해 저자의 내면을 비춘다. 아시시는 잊고 지낸 삶과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장소로 확장된다.
화가 수연의 에세이 ‘흰 비둘기가 사는 곳: 아씨시에서 보낸 3일’은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도시 아시시에서 머문 사흘을 글로 그려낸 책이다. 풍경과 사람, 그때의 감정을 붓질하듯 세밀하게 펼치며 알록달록한 색채부터 무채색의 분위기까지 문장 안에 담았다. 사진이나 영상에 기대지 않고 글 자체로 장면을 보여주는 여행기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책의 시선은 아시시의 외관을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고 저자의 내면으로 향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그림을 그리며 품었던 고민, 자신의 감정을 둘러싼 질문이 여행의 장면과 나란히 놓인다. 수녀원에서 만난 모녀와 이탈리아 수녀, 부지런한 교수 아래에서 고생하는 S씨 등 여행 안팎에서 만난 이들의 사연도 이어진다. 서로 다른 울타리에 있던 사람과 스쳐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여행의 매력이 드러난다.
부산 영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에게 바다와 섬은 늘 곁에 있는 평범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도시를 떠난 뒤에야 바다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명절에 영도로 향하면서 이전에는 지나쳤던 고향의 색을 새롭게 바라본다. 핑크와 민트색 페인트가 남은 오래된 벽도 그곳을 벗어난 뒤 비로소 온전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여행은 단조롭다고 여겼던 삶을 다른 거리에서 다시 살피는 계기가 된다.
아시시는 천주교 성인인 수도사 프란치스코와 서양 미술의 선구자 지오토가 깃든 곳이면서, 이 책에서는 잊고 지낸 자신을 돌아보는 장소로 확장된다. 독자의 시선도 이탈리아 여행지 자체보다 무심히 지나친 기억과 일상으로 옮겨간다. 얇고 반투명하며 가벼운 대상을 그려온 수연은 삶의 유한함과 아름다움, 순수한 즐거움을 화폭에 담는 일을 꿈꾸며 약국에서 일하는 틈틈이 글을 쓴다. 현현에피파니가 펴냈고 가격은 1만70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