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의 한계 넘어 유화로 확장한 김상유의 예술
핵심 요약
김상유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서울미술관에서 8월 17일까지 열린다. 김상유는 직접 개조한 장비로 동판화를 제작했고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목판화와 유화로 작업을 확장했다. 전시는 전통 건축과 명상하는 인물을 통해 작가가 지켜온 고요와 끈기의 세계를 보여준다.
한국 최초의 동판 화가로 이름을 남긴 김상유의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서울미술관에서 8월 17일까지 열린다. 4월 1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동판화에서 목판화, 유화로 작업 영역을 넓힌 그의 예술 세계를 한자리에서 조명한다. 전시 부제는 꺾이지 않고 변치 않는 태도를 뜻하는 ‘쉽게 닳지 않는 사람’이다.
김상유는 1970년 제1회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막혀버린 출구 No Exit’로 대상을 받았다. 판화 작업 기반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작품을 압착할 프레스기를 구하기 어려워 국수 기계를 직접 개조해 사용했다. 나무와 동물, 여러 문양과 글자를 정교하게 새긴 동판화에는 종이를 준비하고 물감을 묻힌 뒤 압착하는 과정에 쏟은 집중과 정성이 담겼다.
동판화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가스는 작가의 시력을 점차 앗아갔다. 김상유는 작업을 멈추는 대신 목판화로 방향을 돌렸고, 이후 칼을 내려놓고 붓을 들어 유화에 도전했다. 매체와 색채를 보다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유화를 통해 조상과 선비의 생활 공간, 그 안에 깃든 정신과 선의 분위기를 찾았다. 눈이 보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내를 여행하며 전통 건축 공간을 살핀 뒤 이를 화면에 옮겼다.
유화에는 원색의 배경과 큼직한 한옥을 비롯해 숲과 강, 꽃밭이 단순하고 담백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배경은 달라져도 찻잔을 앞에 두고 명상하는 한 사람은 거듭 자리를 지킨다. 새 한 마리와 나무 한 그루가 더해진 고요한 화면은 평정심과 끈기라는 작가의 일관된 주제를 드러낸다. 전시장 곳곳에는 관람객이 앉아 작품과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사유의 공간도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