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마 제임스가 확장한 여성해방의 전선
핵심 요약
셀마 제임스의 60년 저술 30여 편을 엮은 선집이 국내에서 처음 정식 번역됐다. 제임스는 무임금 가사·돌봄노동을 자본주의의 토대로 분석하고 흑인·이주민·성판매 여성의 투쟁을 조명했다. 그는 가부장제에만 집중하는 시각을 경계하며 성·인종·국적·계급을 아우르는 연대와 남성의 참여를 강조했다.
선구적 페미니스트이자 노동·반인종주의 운동가인 셀마 제임스(96)의 주요 저작을 엮은 선집 《성, 인종, 그리고 계급》이 갈무리에서 출간됐다. 국내에 그의 글이 정식 번역된 것은 처음이다. 1952년 발표한 소책자 《여성의 자리》를 비롯해 약 60년에 걸쳐 집필한 글 30여 편이 실렸다. 제임스는 이름조차 없던 가사노동을 드러내며 여성을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가장 무자비한 상사는 노동 자체라고 짚었다.
제임스는 여성의 무임금 가사·돌봄노동을 자본주의 경제를 떠받치는 토대로 규정하고 1970년대부터 가사노동 임금 운동을 이끌었다. 임금노동 여성에게는 사업주의 감독 아래 있는 시간뿐 아니라 노동주 전체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동자의 해방 역시 노동조합이라는 기구 자체보다 노동자들이 연대해 파업하고 조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뤄진다고 봤다. 그의 문제의식은 백인 여성에 머물지 않고 흑인과 이주민, 성판매 여성을 계급투쟁의 주체로 세웠다.
1930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유대계 이주민 아버지와 공장 노동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제임스는 사회주의 공동체에서 성장했다. 15세에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CLR 제임스의 조직에 들어가 정치 활동을 시작한 뒤 트리니다드토바고의 카리브해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영국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영국 성판매자 콜렉티브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1982년 11월 런던 킹스크로스의 홀리 크로스 교회를 12일간 점거하고 경찰 폭력에 맞선 여성들의 투쟁도 기록했다.
선집은 국제 여성운동의 갈등과 연대 가능성을 함께 다룬다. 제임스는 성·인종·국적·계급에 따라 서로 다른 자리에 놓인 여성들이 구체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투쟁을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네수엘라 헌법과 반시오니즘, 군복무 거부, 기후위기까지 논의를 넓힌 그는 남성도 해방의 과정에서 배제하지 않았다. 가부장제만을 적으로 삼아 노동과 이윤, 계급·인종·국적의 권력관계를 외면하는 페미니즘의 편협성을 비판했으며, 한국어판 서문에는 이 운동에 더해질 새로운 통찰과 목소리를 기대한다는 뜻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