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입증까지 떠안은 피해자들
핵심 요약
성범죄 피해자들이 녹취 작성과 증거 수집 등 범행 입증 부담까지 떠안고 있다. 피해자들은 소극적인 수사와 반복적인 의심 속에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성범죄자는 늘었지만 기소 인원은 제자리였고 정식 재판에 넘겨진 인원은 감소했다.
직장 상사에게 강제추행을 당한 이다미(가명·36)씨는 경찰의 요구로 가해자의 폭언이 담긴 녹음 파일을 직접 글로 옮겨야 했다. 이씨는 2022년 11월 회식 뒤 노래방에서 상사 A에게 강제로 입맞춤과 신체 접촉을 당했지만 회사를 떠날 수 없어 약 1년간 신고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폭언과 스토킹이 이어졌고 다른 여직원까지 피해를 보자 회사가 2023년 10월 A를 신고했다.
수사 과정에서 이씨는 범행 장소인 노래방의 층수를 확인하자고 제안했으나 경찰은 현장 확인이 필요하지 않다는 취지로 거절했다. 검찰 송치 뒤 A가 층수에 관한 이씨의 기억을 문제 삼아 허위 주장이라고 맞서면서 사건은 보완수사를 위해 경찰로 돌아갔다. A는 피해자 2명을 추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25년 9월 1심에서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받았으나, 다른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한 점이 반영돼 2심 형량은 징역 8개월로 줄었다.
A는 2026년 5월 석방됐고 이씨는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주소를 아는 A의 보복을 두려워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2024년 11월 데이트 앱에서 알게 된 남성에게 잠든 사이 강제추행을 당할 뻔한 손송이(가명·35)씨도 고소 과정에서 만남의 경위를 반복해 질문받았다.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넘겼지만 검찰은 2026년 1월 저항과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불기소했고, 항고도 기각됐다. 손씨는 PTSD와 우울증, 공황장애 증세로 치료 중이다.
최근 3년간인 2022~2024년 성범죄자는 11만3942명으로 2019~2021년 9만5348명보다 19.5% 늘었다. 같은 기간 기소 인원은 4만3484명에서 4만3845명으로 큰 변화가 없었고, 정식 재판에 넘겨진 인원은 3만431명에서 2만7816명으로 감소했다. 성범죄 사건을 맡는 변호사들은 피해자 측이 사실관계와 증거, 수사 방향까지 정리해야 절차가 진행되는 사례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 촬영 피의자의 휴대전화를 확보해 제출하고도 6개월 넘게 디지털 포렌식이 이뤄지지 않은 사례도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