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션 판결로 드러난 의료·돌봄 공백
핵심 요약
대법원이 간병인의 기관절개관 석션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판단하고 이를 지시·묵인한 의사의 유죄를 확정했다. 요양·재활병원과 가정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석션을 맡아온 만큼 의료·돌봄 공백이 우려된다. 간호인력 확충과 방문간호 확대, 재택 돌봄의 면책 범위를 정하는 법적·제도적 보완이 과제로 제시됐다.
대법원이 대학병원 뇌출혈 환자에게 간병인이 기관절개관 석션을 하도록 지시하거나 묵인한 의사에게 의료법 위반 유죄를 확정했다. 환자는 석션 도중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은 뒤 사망했다. 법원은 가래를 제거하는 석션을 의료인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의료행위로 판단해 비의료인의 시술이 무면허 의료행위라는 기준을 분명히 했다.
기관절개 환자와 와상 환자에게 석션은 기도 폐쇄와 폐렴 등 치명적 합병증을 막는 데 필요한 처치다. 정해진 시각 없이 하루 수십 차례, 24시간 수시로 시행해야 하지만 요양·재활병원에서는 간호사 한 명이 수십 명을 맡는 인력 구조 때문에 상주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대신하는 일이 관행처럼 이어졌다. 판결 이후 간병인뿐 아니라 이를 지시·묵인한 의료진과 병원도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졌다.
1심 재판부도 현행 의료체계를 바꾸지 않은 채 모든 석션을 의료인이 직접 담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다. 병원이 법적 위험을 줄이려 석션이 필요한 중증 호흡기 환자의 입원을 꺼리면 요양병원과 재활병원의 돌봄 공백이 커질 수 있다. 가정에서 인공호흡기나 기관절개관을 사용하는 환자 역시 가족과 요양보호사가 생업을 미룬 채 석션을 맡는 경우가 많아 같은 법적 경계를 적용할 때 환자와 보호자의 부담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환자 안전을 위해 비의료인의 처치를 제한하려면 그로 인해 생기는 공백을 메울 제도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의료기관의 간호인력 배치 기준을 강화하고 재택 환자를 위한 방문간호 서비스를 확대하는 방안이 요구된다. 교육받은 가족이나 요양보호사가 재택에서 일부 의료행위를 수행할 수 있도록 면책 범위를 정한 미국·캐나다의 ‘Care Act’와 같은 법적 장치도 검토 대상이다. 의료행위와 필수 돌봄의 범위를 명확히 나누고 안전한 의료와 지속 가능한 간병을 함께 보장할 구조 개편이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