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석의 유년을 가른 피란열차의 30분
핵심 요약
서유석 가족은 피란열차에서 내린 뒤 약 30분 만에 폭격을 피했다. 피란지에서는 부족한 교재를 나눠 쓰며 공부했고 미군에게 먹을 것을 받기도 했다. 철교의 기억과 50환짜리 지폐는 그의 유년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았다.
가수 서유석은 다섯 살 무렵 가족과 함께 피란길에 올랐다가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순간을 겪었다. 가족이 타고 가던 열차가 철교 부근에서 멈추자 어머니는 자녀들을 데리고 급히 객차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들이 현장을 떠난 지 약 30분 뒤 열차가 폭격을 받아 탑승자들이 희생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불과 30분의 차이가 한 가족의 생사를 갈랐다.
피란 중에는 또 다른 위기도 이어졌다. 가족이 아이들과 바닷가에 머물던 때 탱크 한 대가 다가왔고, 서유석은 공포 속에 몸을 낮췄다. 그러나 탱크에 타고 있던 미군은 총을 겨누는 대신 먹을 것을 건넸다. 철교에서의 탈출과 바닷가에서 마주한 군인의 모습은 어린 서유석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다.
피란지에서도 공부는 멈추지 않았다. 학교 건물을 빌려 수업하던 시절, 그는 바닥에 앉아 책을 무릎에 올려놓고 배웠다. 교재가 넉넉하지 않아 두 사람이 책 한 권을 함께 봤고, 칠판의 내용을 옮겨 적을 종이조차 부족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온 뒤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처음 접했다. 공 하나를 두고 여러 아이가 몰려다니던 경기는 어린 시절의 드문 즐거움이었다.
생활 형편은 빠듯했다. 서유석은 어머니에게 받은 50환짜리 지폐 한 장을 품고 다녔고, 학교가 끝나면 철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먼 길을 오가며 하루 네 시간씩 걷는 날도 있었다. 그는 낯선 아이들과 공을 차며 가까워졌고, 가족은 서울에서 피란지로, 다시 서울로 이동하는 시간을 견뎠다. 철교 위의 30분과 50환짜리 지폐는 훗날 노래하는 삶으로 이어진 유년기의 생존 기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