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랑성·사고 품은 전등사 일대 명승 지정 예고
핵심 요약
강화 정족산 전등사 일원이 국가지정유산 명승으로 지정 예고됐다. 삼랑성과 정족산사고, 전등사, 사찰림과 옛길이 자연지형 안에서 하나의 경관을 이룬다. 불교 의례와 왕실 기록문화, 병인양요와 문인 유람의 역사가 공간에 함께 남아 있다.
강화 정족산의 지형을 바탕으로 삼랑성과 정족산사고, 전등사, 사찰림, 노거수, 옛길이 하나의 경관을 이룬 전등사 일대가 국가유산으로 지정된다. 국가유산청은 10일 ‘강화 정족산 전등사 일원’을 국가지정유산 명승으로 지정할 계획을 예고했다. 자연경관 안에 불교 의례와 기록문화, 문인들의 유람 흔적이 함께 축적된 공간이라는 점이 지정 가치로 평가됐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재위기인 371∼384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고려 중기까지 이어진 사찰의 구체적인 역사는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고려가 몽골 침입에 맞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을 때에는 삼랑성 안에 임시 궁궐이 설치됐다. 정족산 능선을 따라 축조된 삼랑성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남아 있으며,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 160여 명의 공격을 물리친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정족산사고가 들어서면서 왕실 기록유산을 보관하는 기능이 더해졌다. 조선 왕실은 임진왜란 이후 춘추관과 강화·태백산·묘향산·오대산 등 5곳의 사고에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주요 기록을 나눠 보관했다. 정족산과 전등사의 역사와 경관은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여러 문헌과 고지도에 기록됐고, 이색(1328∼1396) 등 여러 문인이 이곳을 둘러본 유람 기록도 남겼다.
전등사 일원의 가치는 개별 유적뿐 아니라 정족산의 자연지형에 순응해 형성된 전체 공간에서 드러난다. 산성을 이루는 삼랑성과 산지 사찰인 전등사, 숲과 오래된 나무, 이동로였던 옛길이 서로 연결돼 통합된 경관구조를 만든다. 정족산 능선과 지세를 거스르지 않은 산성과 사찰의 배치는 전통적인 산지가람의 입지 특성을 보여주며, 자연과 역사·문화 요소가 오랜 시간 포개진 명승 경관의 성격을 뚜렷하게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