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글씨와 기도로 이어진 갈물의 삶
핵심 요약
서유석의 어머니는 육영수·이희호 여사와 정치적 진영을 넘어 인연을 이어갔다. 갈물체를 세우고 한글 교본을 펴내며 교육자와 한글서예가로 활동했다. 말보다 실천과 기도로 가족의 신앙을 지키며 아들이 예배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가수 서유석의 어머니는 정치적 대립을 넘어 육영수·이희호 여사와 인연을 이어갔다. 육 여사는 글씨를 배운 제자였고, 이 여사는 서울 창천교회에서 나란히 예배드린 교우였다. 어머니는 모아둔 돈을 주일마다 이 여사에게 건넸다. 그 돈의 성격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박정희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 김대중이 정적으로 맞선 격랑 속에서도 세 여성의 관계는 진영의 경계에 머물지 않았다.
1914년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한글학자이자 교육자인 부친 이만규에게 글씨를 배웠다. 이만규는 쌍둥이 딸 이각경에게 ‘봄뫼’, 어머니에게 ‘갈물’이라는 순우리말 호를 지어줬다. 어머니와 이각경, 동생 이미경은 한글서예가로 이름을 남겼다. 어머니는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뒤 모교와 여러 여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으며, 금란여고 교감과 교장을 지냈다.
어머니는 조선 궁중 여성들이 발전시킨 궁체를 현대적으로 다듬어 단정하면서도 힘 있는 ‘갈물체’를 세웠다. 해방 뒤에는 어린이의 바른 한글 학습을 위해 ‘한글 글씨체’, ‘초등글씨본’, ‘중등글씨본’ 등을 펴냈고, 1958년 갈물한글서회를 창립해 제자를 길렀다. 신사임당 동상 명문과 유관순 열사 기념비, 조만식 선생 어록비에도 글씨를 남겼다. 여성·기독교 미술 단체를 이끌었고 1969년 제1회 신사임당상, 1974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가정에서는 말보다 생활로 신앙을 드러냈다. 비기독교인이던 남편은 결혼 후 믿음을 받아들였고, 가족은 저녁마다 찬송과 노래를 함께 불렀다. 어머니는 말썽을 부리며 한동안 예배에서 멀어진 아들을 억지로 바꾸지 않고 교회와 이웃을 섬기며 기도를 이어갔다. 훗날 서유석은 아내와 다시 예배드리고 교회에서 노래와 간증을 나누면서, 어머니가 기다린 것은 직함이나 성공이 아니라 아들의 믿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획도 건너뛸 수 없는 붓글씨처럼 그의 기도 역시 포기 없이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