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검열선 품은 심훈 원고 59점 공개
핵심 요약
심훈의 친필 원고 등 문학 자료 46건 59점이 국내로 돌아와 공개됐다. ‘그날이 오면’ 원고에는 전면 삭제 도장과 붉은 밑줄 등 일제의 검열 흔적이 남아 있다. 자료는 심훈의 아들이 미국에서 보관해 온 유품으로 문학사와 항일독립운동사적 가치를 지닌다.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소설가인 심훈(본명 심대섭·1901~1936)이 남긴 친필 원고를 비롯한 문학 자료 46건 59점이 광복절을 앞두고 국내에 돌아왔다. 국립한국문학관은 11일 서울 은평구 은평문화원에서 자료를 공개했다. 유족이 기탁한 자료에는 장편소설 ‘상록수’와 ‘직녀성’ 친필 원고, 영화 ‘상록수’ 각본 등이 포함됐다.
1932년 심훈이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에 제출한 ‘심훈 시가집’ 원고에는 당시 검열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표지에는 ‘일부분 삭제 있음’과 ‘치안 방해’라는 붉은 도장이 찍혔다. 시 ‘그날이 오면’ 전문에는 빨간 밑줄과 전면 삭제 도장이 남았다. 총독부는 삭제 부분에 복자나 원형 기호, 공란을 두지 말고 검열 사실도 표시하지 말라는 세부 지침까지 ‘주의’ 도장에 담았다.
검열을 거친 시가집은 심훈이 생존해 있던 동안 출간되지 못했다. 작품은 해방 이후인 1949년에야 한성도서에서 ‘그날이 오면’이라는 제목의 시집으로 나왔다. 이번 자료에는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금메달을 획득한 소식을 접한 심훈이 신문 호외 뒷면에 쓴 것으로 알려진 ‘오오, 조선의 남아여!’ 친필 원고도 들어 있다.
공개된 자료는 심훈의 셋째 아들 심재호(1936~2021)가 평생 모은 유품이다. 1974년 미국으로 건너간 심재호는 버지니아주 알링턴 자택에서 선친의 자료를 보관해 왔다. 기자회견에 화상으로 참석한 손녀 심영주는 할아버지의 작품이 조국의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문학관은 이번 자료가 문학사뿐 아니라 항일독립운동사와 일제강점기 필화·검열의 실상을 살피는 데도 가치가 높은 기록물로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