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구금 속 자백, 반세기 만에 증거능력 잃었다
핵심 요약
1975년 반공법 위반으로 복역한 A 씨가 사후 재심에서 약 50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A 씨는 영장 없이 6일간 구금됐고 변호인의 조력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 재판부는 자백의 임의성과 진술의 증거능력을 부정하고 적법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1975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복역한 뒤 숨진 A 씨가 약 50년 만의 사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형사18단독은 8일 원심을 파기하고, 당시 자백과 진술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으며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적법한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재심은 A 씨가 사망한 이후인 2024년 자녀의 청구로 시작됐다.
1938년생인 A 씨는 37세이던 1975년 8월 5일 자정 무렵 경기 부천시의 한 구멍가게에서 주민 7명을 상대로 박정희 대통령과 군 장성들을 죽여야 국민이 잘살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혐의를 받았다. 자신이 땅굴을 3년 동안 팠으며 김일성이 승리해야 모두가 잘살 수 있다는 내용도 발언해, 당시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북괴’의 선전 활동에 동조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A 씨를 검거해 구금했지만 구속영장은 곧바로 발부되지 않았다. A 씨는 영장 없이 6일 동안 구금됐고, 경찰 피의자신문조서도 이 기간에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검찰 조사는 영장 발부 후 불과 3일 만에 끝났다. A 씨는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재판에 넘겨져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았으며, 형은 1976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재심 재판부는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쓰기 어려웠던 A 씨가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했고, 불법 구금에서 비롯된 심리적 압박이 법정 진술 단계까지 계속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자백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수사기관에서 작성된 진술뿐 아니라 법정에서 나온 진술도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기존 유죄 판결을 유지할 근거가 사라졌다는 것이 이번 무죄 판단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