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협상, 정상회담보다 한미 설계가 먼저다
핵심 요약
이란전쟁의 핵심 쟁점이 핵 폐기에서 호르무즈 해협 개방으로 이동했다. 한국 정부는 핵물질 추가 생산 중단부터 시작하는 3단계 북핵 협상과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하노이 회담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한미가 협상 조건과 보상 범위를 먼저 구체화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이란 핵 위협 제거를 명분으로 폭격에 나선 지 반년이 지났지만, 충돌의 중심은 핵 문제에서 호르무즈 해협으로 이동했다. 이란은 8일 미군 철수 등을 포함한 6개 조건이 수용돼야 해협을 개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협이 완전히 열리면 승리를 선언하는 방안을 준비하면서, 핵 합의가 없어도 전쟁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뜻을 고위 참모들에게 내비쳤다.
당초 목표였던 이란 핵 폐기 대신 이란이 반격 수단으로 제시한 해협 문제가 출구 전략의 조건으로 떠오른 모습은 미중 무역 전쟁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중국의 대미 무역 장벽 철폐를 관세 인하 조건으로 제시했으나,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자 지난해 11월 정상회담에서 관세율 인하와 수출 통제 유예를 맞바꿨다. 두 협상 모두 최초 목표와 다른 쟁점을 중심으로 타협이 이뤄지는 양상을 보였다.
한국 정부가 지난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제시한 대북 정책의 1차 목표는 북미 정상회담 성사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핵물질 추가 생산 중단부터 시작하는 3단계 북핵 협상안을 제안했다. 이 구상을 실행하려면 생산 중단 대상인 핵 시설과 물질, 단계별 보상 범위를 사전에 구체화해야 한다. 조건이 정교하게 마련되지 않으면 북한이 보상을 확보한 뒤 비핵화 조치를 늦추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7년 전 하노이 회담에서는 양국 실무진이 비핵화의 기초 합의를 만들지 못한 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주 앉았다. 핵 시설 폐기와 제재 해제 범위를 둘러싼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아 회담은 약 4시간 만에 결렬됐다. 정부는 오는 11월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등을 대화 기회로 보고 있지만, 미국은 한국의 3단계 협상안에 대한 지지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정상 간 관계에 의존하기 전에 미 국무부와 조율해 한미 공동 협상안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