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 두 아들 잃은 박영숙씨, 서울서 영면
핵심 요약
북송 사업으로 북한에 들어갔다가 1997년 탈북한 박영숙씨가 서울 자택에서 85세로 숨졌다. 박씨는 북한에서 오빠 두 명과 두 아들을 연행과 수용소 수감 뒤 잃었다. 그의 생애와 북한 귀국자의 삶을 담은 증언집은 지난 5월 일본에서 출간됐다.
1960년대 북송 사업으로 북한에 들어갔다가 1997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재일조선인 2세 박영숙씨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강서구 자택에서 숨졌다. 향년 85세다. 박씨는 북한에서 오빠들과 두 아들을 잃은 뒤 딸 부부, 손녀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했으며 이후 한국에 입국했다.
박씨는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대구 출신 재일조선인 가정의 10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다섯 살이던 1945년 피난처에서 원자폭탄의 버섯구름을 목격했다. 직접 피폭되지는 않았으나 히로시마의 집이 불탔고 임신 중이던 시누이가 숨졌다. 넷째 오빠도 피폭 후유증에 시달렸다. 1960년 부모와 형제자매 7명이 북송선을 탔지만 박씨는 사회주의 체제의 억압을 걱정해 일본에 남았다. 그러나 1962년 12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편지를 받고 청진으로 향했고,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후 신의주로 옮긴 박씨는 일본 가나가와현 출신 재일조선인 남성과 결혼해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다. 1970년대 둘째 오빠가 간첩 혐의로 국가안전보위부에 끌려가 숨졌고, 이에 불만을 드러낸 셋째 오빠도 연행돼 요덕수용소에서 사망했다. 1980년대에는 장남이 연행된 뒤 목숨을 잃었고 1990년대에는 차남도 같은 과정을 겪었다. 가족은 숨진 오빠들과 두 아들의 시신조차 돌려받지 못했다.
박씨의 생애와 북한 귀국자들의 삶을 담은 책 ‘증언 북한 귀국자-조국으로 건너간 ‘자이니치’는 어떻게 살았는가’는 지난 5월 일본에서 출간됐다. 이 책에는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대표가 진행한 박씨의 인터뷰 등이 실렸다. 박씨가 북한에 있던 1993년에는 넷째 오빠의 일본 중학교 동창생들이 치료비 약 200만엔을 모아 보냈다. 모금에는 자신도 피폭 피해로 정부 지원을 받던 동창까지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