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부터 죽부인까지, 유물에 담긴 여름 지혜
핵심 요약
냉방기기가 없던 시대에는 부채와 등등거리, 죽부인 등이 여름 필수품으로 쓰였다. 앵두화채는 갈증과 기력을 보완했고 굿은 액운을 막고 평안을 기원하는 역할을 했다. 박물관 소장 유물은 생활 기술과 예술, 신앙이 어우러진 선조들의 여름 문화를 보여준다.
냉방기기가 없던 시대의 여름은 주변 재료와 생활 경험을 활용한 도구로 견뎌야 했다. 손으로 바람을 만드는 부채, 옷과 몸 사이에 바람길을 내는 등등거리, 잠자리의 열기를 덜어주는 죽부인, 갈증을 달래는 앵두화채에는 무더위에 대응한 선조들의 생활 방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은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이와 관련한 소장품을 소개했다.
가장 널리 쓰인 여름 도구인 부채는 태극선과 합죽선, 단선, 윤선, 파초선 등 형태와 용도가 다양했다. 부채 면에 산수화나 글씨를 넣은 선면화는 바람을 일으키는 실용품이면서 감상할 수 있는 예술품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전 만운 필 선면 산수도’도 펼쳐진 부채 위에 산수 풍경을 배치해 두 기능을 함께 보여준다. 부채가 계절용품을 넘어 당시의 미감까지 담아낸 생활 유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등나무 줄기를 잘게 쪼개 엮은 여름용 상의 등등거리는 옷감이 등에 붙지 않도록 간격을 만들어 공기가 통하게 했다. 대오리를 둥글게 엮은 원통형 죽부인은 잠잘 때 팔이나 다리를 올려 몸에 열이 쌓이는 것을 줄이는 침구로 쓰였다. 음식으로는 단오 무렵 앵두와 오미자를 이용해 만든 앵두화채가 여름철 갈증을 식히고 기력을 보충하는 별미로 자리했다. 도구와 옷, 침구, 먹거리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더위에 대응한 셈이다.
한여름에 질병과 재난을 마주한 사람들은 굿과 같은 민속 의례를 치르며 액운을 막고 평안을 빌었다. 무당이 잡귀를 제압하는 데 사용한 작두와 다섯 방위의 신장을 상징하는 오방신장기는 당시의 신앙과 세계관을 드러낸다. 선조들의 여름나기는 체온과 갈증을 다스리는 생활 기술에만 머물지 않고 공동체 의례를 통한 마음의 안정까지 아울렀다. 박물관이 공개한 유물들은 생활용품과 음식, 신앙이 결합된 당시의 여름 문화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