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 동굴에 켜켜이 쌓인 샹파뉴의 시간
핵심 요약
랭스의 고대 백악 채석장은 수도원 저장고와 전쟁 방공호를 거쳐 샴페인 숙성고가 됐다. 뽀므리와 에페르네의 지하에는 장대한 갱도와 수천만 병의 샴페인이 자리한다. 랭스의 유적과 기념물에는 포도 재배의 역사와 전쟁, 화해의 시간이 함께 남아 있다.
섭씨 42도의 폭염이 덮친 프랑스 랭스의 지하에는 전혀 다른 계절이 흐른다. 떼땅져와 뽀므리, 뵈브 클리코의 샴페인은 연중 10도 안팎을 유지하는 백악 갱도에서 숙성된다. 지하 30m까지 이어진 공간은 4세기 갈로로마 시대 채석장에서 수도원 저장고와 제1차 세계대전 방공호를 거쳐 오늘날 수천만 병을 품은 까브가 됐다.
뽀므리의 지하 도시는 남편을 잃고 사업을 맡은 마담 뽀므리가 1868년 백악 채석장 60여 개를 연결하면서 조성됐다. 8년에 걸친 공사로 총연장 18㎞의 갱도가 완성됐고, 내부에는 세계 도시의 이름과 1882년 귀스타브 나블레가 새긴 부조가 남았다. 2002년부터는 현대미술 작품도 전시되고 있다. 지상에는 25㏊ 규모의 클로 퐁파두르 포도밭이 펼쳐져 지하의 냉기와 대비를 이룬다.
기차로 30분 남짓 떨어진 에페르네의 아브뉴 드 샹파뉴 아래에는 110㎞의 까브와 약 2억 병의 샴페인이 자리한다. 여러 하우스가 일반 방문객에게 닫혀 있지만, 드 브노쥬는 2015년 객실 다섯 개와 바를 열었다. 인근 크라망의 샤도네 밭과 오빌레의 소규모 생산자들은 또 다른 샹파뉴를 보여준다. 오빌레에서는 6대째 이어진 조셉 데뤼에가 피노 뫼니에로 빚은 블랑 드 누아를 선보인다.
랭스의 지상에도 포도와 전쟁의 흔적이 겹친다. 2세기 말부터 3세기 초 사이 세워진 마르스 문에는 포도 압착 장면이 남아 있고, 랭스 대성당 앞 돌판은 1962년 프랑스와 서독의 화해를 기록한다. 독일 점령기에 사라진 수베 분수의 승리의 여신상은 1989년 금빛 복제상으로 돌아왔다. 까브는 대부분 예약제로 운영되며, 한여름에도 내부가 10도 안팎이어서 겉옷과 편한 신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