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 호조 속 내수 부진…경상흑자 확대가 부른 통상 압박
핵심 요약
반도체 수출 호조로 경상수지 흑자가 기록적 수준을 기록했지만 내수 부진과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CEPR은 흑자국의 내수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며 관세·환율 조정만으로 불균형 해소가 어렵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에 집중된 성장이 다른 산업의 둔화를 가리고 있다며 과실의 확산을 주문했다.

한국 경제가 반도체 수출 호황에 힘입어 기록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지만, 내수 부진과의 온도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럽경제정책연구센터(CEPR)는 최근 보고서에서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하는 국가도 세계 경제 불균형에 책임이 있다고 분석했다. 흑자국이 국내 소비와 투자를 충분히 늘리지 않으면 남은 저축이 해외로 흘러가 적자국의 금융 불균형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CEPR은 흑자국의 내수 부진과 적자국의 과잉 차입이 맞물려 있어 관세나 환율 조정만으로는 불균형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봤다. 특히 흑자국이 재정지출과 임금, 사회안전망 강화를 통해 국내 수요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출과 해외 수요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적자국의 무역갈등과 보호주의를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기록적인 경상수지 흑자와 수출·소비 간 성장 격차가 동시에 나타나는 한국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정부는 무역적자를 줄이고 제조업 생산 기반을 자국으로 이전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경상흑자국에 투자를 요구해 왔다.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에서 대미 투자 확대가 핵심 의제로 다뤄진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과거에는 한국의 수출이 늘자 미국이 시장 개방을 압박했지만, 지금은 미국에 투자하라고 압박한다"고 분석했다. 한국 기업의 해외투자가 확대되면 국내 설비투자와 고용, 가계소득으로 이어지는 효과가 약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수출에 집중된 성장의 과실을 소비와 투자, 다른 산업으로 확산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지금 경기를 주도하는 것은 반도체"라며 "반도체 수출이 좋다고 해서 다른 기업과 산업까지 좋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교수는 "반도체가 워낙 잘되기 때문에 다른 산업이 잘되지 않는 것이 묻히고 있다"며 착시 현상을 지적했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늘어난 소득이 투자로 이어져 생산능력이 증대해야 잠재성장률이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