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환 ‘혈죽도’ 원본, 120년 만에 전시
핵심 요약
민영환의 충절을 상징하는 혈죽도가 담긴 대한매일신보 원본이 광복 81주년 전시에서 공개된다. 피 묻은 유품을 보관한 방에서 자란 네 줄기 대나무는 보도와 그림을 거쳐 구국의 상징이 됐다. 대한매일신보는 혈죽도를 지면에 싣고 국권 회복과 항일 의식을 확산시켰다.
을사조약 강제 체결에 맞서 순국한 충정공 민영환의 절개를 상징하는 ‘혈죽도’가 광복 81주년을 맞아 공개된다. 독립기념관은 15일부터 기획전시관 제7관에서 여는 ‘세계와 함께한 독립운동’ 전시에 혈죽도가 인쇄된 1906년 7월 17일자 대한매일신보 원본을 선보인다. 복합 전시 공간으로 새롭게 문을 여는 제7관에는 이 자료를 포함한 희귀 자료 93건이 전시된다.
민영환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 체결에 상소로 저항한 뒤 같은 달 30일 의관 이완식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듬해 7월 4일 유족들은 그의 피 묻은 옷과 칼을 보관하던 마루방에서 네 줄기의 대나무가 자란 것을 발견했다. 대한매일신보는 다음 날 이를 ‘녹죽이 저절로 자라남’이라는 내용으로 알렸고, 현장에는 대나무를 보려는 인파가 몰렸다. 사대부들도 그림으로 민영환의 충절을 기리면서 ‘녹죽’은 점차 ‘혈죽’으로 불리며 구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혈죽의 모습은 발견 13일 뒤인 1906년 7월 17일 대한매일신보 지면에 그림으로 처음 등장했다. 당시에는 촬영한 기념사진을 신문에 인쇄하기 어려워 화가 양기훈이 대나무 그림을 제작했고, 신문사는 이를 목판에 새겼다. 평소 광고가 실리던 4면 전체를 비워 혈죽도를 배치하고 독자들에게 그림을 널리 감상하며 충절을 기리자는 취지의 문구도 덧붙였다. 해당 원본은 독립기념관이 1983년 정낙평에게 구한말 태극기 등 근대 사료와 함께 기증받은 자료다.
대한매일신보는 영국인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과 독립운동가 양기탁이 일제의 침략을 고발하려고 1904년 7월 18일 창간했다. 영일 동맹과 치외법권을 활용해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비판하고 의병투쟁을 상세히 다뤘으며, 1907년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다. 신문사에 일본인의 출입을 막는 간판을 내걸 정도로 저항적 성격을 드러낸 이 신문은 혈죽도를 통해 민영환의 순국을 개인의 죽음에 머물지 않는 국권 회복과 항일 의식의 상징으로 확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