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사업가 한시대, 독립운동 자금과 통합에 헌신
핵심 요약
한시대는 미국 농장사업으로 마련한 재원을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지원에 투입했다. 해방 뒤 귀국해 신진당을 결성하고 좌우합작과 민족 단결을 촉구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교포사회 통합과 민족교육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미국에서 농장사업을 일군 한시대는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부터 재미교포들과 독립운동 지원에 나섰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뒷받침할 군자금을 모아 송금했으며, 사업에서 거둔 성과를 고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사용했다. 그는 1903년 14세 때 아버지와 함께 한국을 떠났지만 일제의 침탈로 어려움에 놓인 고국을 잊지 않았다.
1937년 중일전쟁으로 항일투쟁이 전쟁 단계에 접어들자 지원 활동도 확대됐다. 한시대는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등 미주 지역 6개 단체가 연합한 한국광복진선 결성에 참여했고, 중국 진강에 있던 임시정부의 외곽단체로 활동하며 8년 동안 임시정부를 후원했다. 대한인국민회 집행위원장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위원장,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부 부위원장 등도 맡았다.
해방 뒤에는 자금 지원을 넘어 직접 귀국해 정치세력의 통합을 추진했다. 1945년 11월 4일, 56세였던 한시대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대표단을 이끌고 한국에 도착했다. 중립적 위치에서 중간세력의 결집을 추진한 끝에 1946년 9월 15일 천도교 청우당에서 8개 정당과 단체를 아우른 신진당을 결성하며 좌우합작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
한시대는 1946년 7월 18일과 8월 1일 라디오 방송에서 파당적 논쟁을 멈추고 정당과 민중이 협력해야 한다며 좌우 세력의 단결을 호소했다. 같은 해 7월 23일에는 서울 종로 기독교청년회관에서 대중 강연회도 열었다. 좌우합작이 성과를 거두지 못해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흥사단 활동을 이어가며 교포사회 통합과 민족교육 증진에 힘썼고, 이러한 공로로 2016년 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