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오판이 낳은 이란과의 반세기 적대 관계
핵심 요약
미국과 이란의 반세기 적대 관계의 출발점은 1979년 이란혁명이다. 미국은 혁명 신호를 오판하며 동맹국을 잃었고,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사태로 불신이 극대화됐다. 스콧 앤더슨의 신간은 이 과정을 생생하게 복원한 역사 논픽션이다.
미국과 이란은 왜 반세기 가까이 서로를 가장 위험한 적으로 여기게 됐을까. 종군기자 스콧 앤더슨이 쓴 신간은 1979년 이란혁명을 분기점으로 두 나라가 동맹에서 적대 관계로 급변한 과정을 추적한 역사 논픽션이다. 저자는 팔레비 왕가 측근과 카터 행정부의 백악관·국무부·중앙정보국(CIA) 관계자, 옛 혁명가 등 생존 증인 수십 명을 인터뷰하고 기밀 해제 문서와 회고록을 교차 검증해 혁명의 전말을 복원했다.
반세기 전만 해도 이란은 미국이 서아시아에서 가장 신뢰하던 동맹국이었다. 그러나 1979년 이란혁명은 두 나라의 관계를 근본부터 뒤집었다.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 국왕의 장기 집권과 서방식 근대화 정책에 대한 반발 속에서 일어난 이란혁명은 현대 세계 최초의 성공한 종교 혁명으로 평가받는다. 혁명 이후 이란은 반미주의를 국가 정체성의 한 축으로 삼았고, 미국은 핵심 동맹국을 하루아침에 잃었다.
책이 특히 공을 들이는 대목은 혁명 자체보다 이에 대한 미국의 오판이다. 혁명 발발 5개월 전 CIA는 “가까운 장래에 이란의 정치 행태에는 어떠한 급진적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978년 말 이란 전역이 총파업과 시위로 마비되고 내전 직전까지 치달았지만, 지미 카터 대통령은 여전히 팔레비 국왕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불과 몇 주 뒤 팔레비는 왕좌를 버리고 망명길에 올랐다.
저자는 미국이 이미 눈앞에서 진행 중인 혁명의 신호를 보고도 믿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소련과 맞닿은 전략적 요충지이자 석유 공급처, 미국 최대 군수품 시장이었던 이란은 미국에 너무나 중요한 동맹이었다. 오히려 이 때문에 미국 외교가에서는 기존 관계를 흔드는 정보를 외면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고, 결국 미국은 ‘샤(국왕)가 없는 이란’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혁명으로 경색됐던 양국 관계는 1979년 11월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사태로 인해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미국이 팔레비 전 국왕의 입국을 허용하자 혁명 세력은 미국이 옛 체제를 되살리려 한다고 의심했고, 급진 강경파는 미국대사관을 점거해 외교관과 직원 등 미국인 52명을 444일 동안 억류했다. 책은 이 사건이 단순한 외교 분쟁이 아니라 혁명 정부와 미국 사이의 불신이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굳어진 결정적 계기였다고 짚는다. 초강대국 미국이 가장 가까운 동맹국의 변화를 끝내 읽어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최대의 적을 만들어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 이 책은 반세기 전의 혁명을 다룬 역사서이지만, 오늘날 미국과 이란의 대립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해설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