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본토 공습이 바꾼 태평양 전쟁의 흐름
핵심 요약
1942년 둘리틀 특공대는 B-25 폭격기 16대로 일본 주요 도시를 공습했다. 군사적 실익이 제한된 모험이었지만 일본군의 성급한 미드웨이 공격을 촉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감정이 판단을 흔드는 역사적 사례는 최근 한국 주식시장과 경제정책의 역할을 돌아보게 한다.

1942년 4월 18일 미국의 B-25 폭격기 16대가 일본 주요 도시 상공에 진입해 폭탄을 투하했다. 이 공격으로 일본인 50명이 숨지고 400여 명이 다쳤다. ‘둘리틀 특공대’가 수행한 공습은 진주만 공격에 상응하는 군사적 타격보다 침체한 미국민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데 무게를 두고 급히 마련된 작전이었다.
미국은 폭격기 16대를 출격시키기 위해 항공모함 호닛과 엔터프라이즈를 일본 근해로 이동시키고, 항모 운용을 전제로 하지 않은 폭격기까지 개조해 함상에서 띄웠다. 제한적인 성과를 위해 항모 2척을 위험에 노출한 전례 없는 모험이었다. 이 가운데 한 척이라도 잃었다면 뒤이은 미드웨이 해전의 승패와 태평양전쟁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었고, 한국의 독립과 이후 역사에도 영향을 미칠 중대한 위험이었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반복하기 어려운 일회성 공습이었지만 일본군 사령부가 받은 충격은 컸다. 전쟁 중에도 본토 상공만큼은 안전하다는 믿음이 무너지자 일본군은 미드웨이 공격을 성급하고 조잡하게 추진했다. 군사적 효율보다 감정이 앞선 미국의 작전이 일본 지휘부의 조급한 대응을 불러오면서, 결과적으로 태평양의 제해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됐다.
둘리틀 공습의 과정은 공포와 감정이 합리적 판단을 흔들고 예상 밖의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한 달간 요동친 한국 주식시장에도 같은 문제의식이 이어진다. 투자 결과의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지만 누구도 공포와 감정의 격랑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다. 경제정책은 이런 동요를 줄이는 역할을 해야 하며, 국가의 조치가 시장의 불안을 억제했는지 오히려 키웠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