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 다시 만난 인간 안중근
핵심 요약
‘안응칠 워크숍’은 영웅의 초상 뒤에 가려진 인간 안중근을 탐색한다. 충돌하는 기록과 중단되는 연기를 통해 역사 재현의 한계를 드러낸다. 치바와의 관계, 신념과 신앙의 균열을 제시하며 해석을 관객에게 맡긴다.
박상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교수가 쓰고 연출한 연극 ‘자객열전Ⅱ-안응칠 워크숍’은 완성된 위인의 초상 대신 인간 안중근의 복잡한 내면을 무대에 올렸다. 지난 7월 23일부터 8월 2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된 작품은 하얼빈 의거를 장엄하게 재현하는 전기극에서 벗어나, 서로 충돌하는 기록을 검토하며 안중근에게 접근하는 창작 과정을 보여줬다.
극의 시간은 1909년 10월 26일부터 1910년 3월 26일까지와 이를 재현하는 현재를 오가고, 공간은 뤼순 감옥·조사실·재판정과 극장으로 이어진다. 연출과 조연출, 무대감독은 재판장과 신부, 간수 등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배역 밖으로 나와 진술의 신빙성을 따진다. 안중근 역 배우도 장면을 멈추며 일본인이 작성하고 통역을 거친 기록을 그의 실제 목소리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작품의 중심에는 안중근과 일본인 간수 치바 토시치의 관계가 놓인다. 처음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흉악범으로 여겼던 치바는 단지동맹과 의병 활동, 일본군 포로 석방 이야기를 들으며 안중근을 한 인간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치바와 미소부치 검찰관을 한 배우가 맡은 구성은 일본 제국의 심문과 억압, 개인이 보인 친절과 이해를 한 몸에 겹친다. 그 친절이 진심인지 회유인지는 끝내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연극은 동양 평화를 내세운 신념과 살인을 죄로 보는 천주교 신앙 사이의 균열도 드러낸다. 미소부치가 교리를 들어 압박하고 빌렘 신부의 판단을 언급하자 안중근은 침묵하며, 작품은 이를 영웅답지 못한 약점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실제 연출가 이해성이 극 중 연출을 맡아 사형 장면을 재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대목 역시 역사 재현의 한계를 환기한다. 마지막에는 의병장·신자·사상가·가장 등 여러 얼굴을 나란히 놓으며 판단을 관객에게 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