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고도 맞서지 않은 박복대, 폭력의 70년을 걷다
핵심 요약
박형서가 13년 만에 648쪽 장편 ‘죽도록 맞으며 살아왔다’를 내놓았다. 박복대의 생애는 한국전쟁부터 5·18과 1987년 민주화 물결까지 이어진 폭력을 관통한다. 작가는 방대한 사실 조사와 유머를 결합해 고통스러운 현대사를 소설로 완성했다.
소설가 박형서가 13년 만의 장편 ‘죽도록 맞으며 살아왔다’를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냈다. 648쪽에 이르는 소설은 평생 폭력을 당하면서도 반격하지 않는 박복대의 생애를 따라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되짚는다. 비극적인 사건과 뭉근한 농담을 한데 엮어, 고통스러운 역사를 독자가 끝까지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1930년대 강원도 춘천 유포리 농가에서 태어난 박복대는 어린 시절 신병을 앓은 뒤 피가 나고 뼈가 부러져도 빠르게 낫는 회복력을 얻는다. 하지만 묘하게 구타를 불러오는 운명 속에서도 남을 때리지 않는다. 아버지와 이웃을 시작으로 한국전쟁의 중공군,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광주, 형제복지원 사건기의 부산, 1987년 민주화 물결 속 서울에서 연이어 폭력을 겪는다. 산속에 숨었던 그는 사람 곁에 있어야 자신도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세상에 돌아오지만, 마지막 요양원에서도 주먹을 피하지 못한다.
박형서는 이 작품을 데뷔 이전부터 품어온 작가적 숙원으로 삼았다. 2017년 겨울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해 구상에만 2년을 들였고, 방학과 연구년 동안 인천 영종도와 강원도 고성 등에서 초고를 썼다. 2023년 초 연재를 시작한 뒤 약 2년에 걸쳐 전면 수정했다. 준비 과정에서는 한국전쟁의 공중폭격과 민간인 학살, 과거 청산 문제를 다룬 기록과 여러 논문을 살폈고, 지명과 학교·시장 이름의 시대별 차이는 지도와 인터넷을 통해 확인했다. 일부 조사에는 인공지능 비서도 활용했다.
작가는 상상력에 크게 기대던 기존 창작 방식과 달리 엄밀한 사실을 모으는 일을 우선해야 했던 점을 이번 소설의 큰 도전으로 꼽았다. 집필 과정에서 박복대는 단순히 맞기만 하는 인물에서 충돌을 피하고 타인의 고통까지 거부하는 평화주의적 성향의 인물로 발전했다. 제주 4·3과 선감학원은 짧은 배경으로 압축됐고, 곰과 국밥, 두부 같은 요소가 더해졌다. 박복대가 견딘 폭력에는 끝내 보상도 대가도 주어지지 않는다. 박형서는 고향 춘천을 주인공의 출생지로 삼아, 자신이 나고 자란 터전의 역사에 느껴온 마음의 빚을 일부 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