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운동 교정 27곳, 독립유공자학교로 되살아나다
핵심 요약
충남의 학생들은 1919년부터 광복 직전까지 학교와 장터에서 만세운동과 항일활동을 이어갔다. 충남교육청은 학교 출신 독립유공자를 조사해 현재까지 27곳에 독립유공자학교 현판을 헌정했다. 탄압의 흔적이 남은 학교들은 독립운동의 역사와 보훈 가치를 배우는 교육 현장으로 재조명됐다.
충남 곳곳의 학교에서 일제에 맞섰던 학생들의 행적이 100여 년 만에 ‘독립유공자학교’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1919년 3월 13일 예산 대흥공립보통학교 학생 300여 명은 대흥시장으로 나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는 김동욱·김용태·김이기·박동복·이희주·정옥섭 등 주도 학생 6명을 보안법 위반 혐의로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에 넘겼다. 김용태에게는 졸업장조차 주지 않았다.
대흥초등학교가 보관한 당시 학적부에는 김용태를 ‘소요사건의 주모자’로 규정해 수업증서를 수여하지 않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튿날 천안 목천보통학교에서는 이규태와 김소용이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전교생 179명이 만세를 외쳤다. 두 학생은 연행된 뒤에도 배후를 밝히지 않았고, 이규태는 1920년 10대의 나이로 상해에 망명해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3월 24일에는 서산 해미공립보통학교의 김관룡이 이계성과 함께 졸업생·재학생을 이끌어 면사무소와 우시장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학교를 중심으로 한 항일운동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공주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 졸업생들은 1919년 4월 1일 공주 장날 거사를 준비하며 기숙사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했고, 이규남이 만든 대형 태극기 4매를 장터에 내걸었다. 1936년 공주고등보통학교 구자훈 등 7명은 항일결사 ‘명랑클럽’을 조직해 일어 사용 금지와 신사 참배 거부 활동을 펼쳤다. 1944년에는 부여초등학교 출신 최을규가 낙화암에서 세 차례 만세를 외친 뒤 백화정 기둥에 혈서로 ‘조선독립만세’를 새겨 옥고를 치렀다.
충남교육청은 2022년 7월부터 국가보훈부 공훈록과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자료 등을 토대로 지역 학교 출신 독립유공자를 조사했다. 2023년에는 14개 학교 출신 54명의 공훈을 확인했으며, 현재까지 27개 학교에 독립유공자학교 현판을 헌정했다. 대흥초·목천초·해미초도 2024년 지정 학교에 포함됐다. 과거 일제가 불온한 공간으로 낙인찍었던 교정은 이제 학생들이 독립운동가를 학교의 선배로 기억하고, 교육과정에서 역사 정신과 보훈의 가치를 배우는 현장으로 다시 기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