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스 지하 30m, 샴페인의 시간을 품다
핵심 요약
폭염 속 랭스의 백악 갱도는 연중 10도 안팎을 유지하며 샴페인 숙성고로 쓰이고 있다. 떼땅져와 뽀므리의 지하에는 로마 채석장과 수도원 저장고, 전쟁 방공호의 흔적이 겹쳐 있다. 마담 뽀므리와 마담 클리코는 지하 공간과 제조 기법을 혁신하며 샴페인의 역사를 확장했다.
폭염이 덮친 프랑스 샹파뉴의 랭스에서는 지상과 지하가 서로 다른 계절을 이룬다. 한낮 기온이 42도까지 치솟아 상점들이 철제 블라인드를 내린 날에도, 생니케즈 언덕 아래 백악 갱도는 연중 10도 안팎의 서늘함을 유지했다. 빛과 진동이 거의 없는 이 공간에서 수많은 샴페인 병이 긴 숙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1734년 문을 연 떼땅져의 지하는 여러 시대가 층층이 포개진 장소다. 가장 깊은 곳에는 4세기 갈로로만시대 로마인들이 건축용 백악을 캐며 만든 피라미드 형태의 수직갱이 남아 있다. 위층에는 13세기 베네딕토회 생니케즈 수도원의 저장고와 고딕 아치가 보존돼 있다. 프랑스혁명으로 지상 수도원은 사라졌지만 지하 공간은 살아남았고,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병사와 시민의 방공호로 쓰였다. 백악 벽에는 당시 남긴 낙서도 선명하다.
같은 언덕의 뽀므리는 이 지하 공간을 거대한 도시로 확장했다. 남편을 잃고 1858년 사업을 이어받은 마담 뽀므리는 1868년부터 버려진 백악 채석장 60여 개를 갱도로 연결했다. 공사는 8년간 이어졌으며 지하 30m에 총연장 18㎞의 통로가 만들어졌다. 100여 개의 계단 아래 펼쳐진 갱도에는 뉴욕과 런던,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세계 도시 이름이 붙었다. 1882년 귀스타브 나블레가 무른 백악 벽에 새긴 대형 부조와 2002년부터 전시된 현대미술 작품도 샴페인 저장고와 한 공간을 이룬다.
뽀므리의 지하는 습도 98%를 유지해 한여름에도 겉옷이 필요할 만큼 차갑다. 지상에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25㏊ 규모의 클로 퐁파두르 포도밭이 42도의 햇볕을 받고 있다. 이 언덕에는 샴페인 제조를 바꾼 여성들의 역사도 겹친다. 1805년 스물일곱 살에 하우스를 물려받은 마담 클리코는 병을 거꾸로 세워 침전물을 병목에 모으는 르뮈아주 기법을 고안했다. 로마 채석장과 수도원 저장고, 전쟁 피란처를 거친 랭스의 지하는 오늘도 샴페인이 익어가는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