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족을 옭아맨 간첩단 조작, 37년 만의 무죄
핵심 요약
1979년 치안본부가 두 가족 24명을 지하당 조직원으로 지목한 간첩 사건은 조작으로 드러났다. 진항식과 김상회에게 사형이 집행됐고 다른 가족들도 무기징역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2016년 강압으로 얻은 진술을 인정하지 않고 관련자 9명의 무죄를 확정했다.
1979년 8월 9일 치안본부는 진씨·김씨 두 가족을 중심으로 한 24명이 삼척에 조선노동당 강원도지하당을 조직했다고 발표했다. 진항식·김태룡·진창식·김상회·진형대·진윤식·김건회·김달회·김순자의 사진과 신원이 신문 지면에 공개됐고, 친척·인척 관계와 친목계를 이용해 조직을 만들었다는 혐의가 제시됐다. 그러나 관련자 9명은 37년 뒤 대법원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수사 당국은 한국전쟁 때 월북한 진현식이 1974년 동해안으로 침투해 가족들을 포섭하고 공작금 250만 원을 남긴 뒤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두 가족이 동해안 경비 상황을 비롯한 군사기밀을 수집해 보고하고, 민중봉기를 준비하며 조직을 넓히는 한편 대학생 시위를 배후에서 선동했다는 혐의도 더했다. 250만 원은 당시 도곡동 13평형 아파트 전세보증금 60만 원과 영동지구 단독주택 전세보증금 약 150만 원을 크게 웃도는 액수였다.
사건이 발표된 날은 YH무역 노동자들이 부당 폐업에 맞서 회사 정상화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신민당사로 농성장을 옮긴 시점과 겹쳤다. 노동자들은 7월 30일 야간 농성에 들어갔고 회사는 8월 6일 폐업을 다시 공시한 데 이어 7일 기숙사 식당을 폐쇄했다. 정권은 11일 경찰 1000여 명을 투입해 농성을 강제 해산했고, 이 과정에서 김경숙이 4층에서 추락했다. 당시 중앙정보부·국군보안사령부·치안본부는 간첩 검거를 놓고 경쟁하던 상황이었다.
조작된 혐의가 남긴 형벌은 돌이킬 수 없었다. 진항식과 김상회에게 사형이 집행됐고, 다른 가족들은 무기징역 또는 징역 5~10년을 선고받았다. 춘천지방법원의 재심 승소를 거쳐 2016년 9월 23일 대법원은 가혹행위와 협박, 회유로 얻은 진술은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관련자 9명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원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던 김순자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걸핏하면 눈물이 난다고 밝힐 만큼 장기간 이어진 고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