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세계화 이끈 오쿠다 히로시 별세
핵심 요약
도요타의 세계화와 프리우스 개발을 이끈 오쿠다 히로시 전 최고경영자가 93세로 별세했다. 그는 비창업가 출신 경영자로서 족벌주의와 불투명한 내부 거래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해외 생산 확대와 지속적인 조직 개선을 추진하며 도요타의 글로벌 판매 성장을 주도했다.
도요타의 해외 생산 확대와 하이브리드차 시대를 이끈 오쿠다 히로시 전 최고경영자가 별세했다. 향년 93세다. 정확한 사망 시점과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도요타는 장례 절차를 유족이 준비하고 있으며, 추후 공식 추모 행사를 마련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오쿠다는 1932년 12월 29일 미에현 쓰에서 지역 증권회사를 운영하는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1955년 히토쓰바시대학을 졸업한 뒤 도요타에 입사해 회계부서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1995년 사장, 1999년 회장에 올랐고 2006년 퇴임할 때까지 도요타에서 45년을 일했다. 1997년에는 세계 최초의 대량생산 하이브리드 승용차인 프리우스 개발을 이끌었다.
창업자 가문인 도요다 일가 출신이 아니었던 오쿠다는 회사 안팎에서 거침없이 의견을 밝힌 경영자로 꼽혔다. 경영진에 합류하기 전부터 내부의 불투명한 거래를 놓고 상사와 이사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창업자 손자인 아키오 도요다가 최고위직에 오르는 과정에는 족벌주의라고 공개 비판하며 “아키오 정도의 인재는 도요타 곳곳에 감자처럼 널려 있다”고 말했다. 젊은 경영진의 적극적인 기용도 주장했다.
경영을 맡은 뒤에는 실적이 좋을 때 조직을 바꿔야 한다는 원칙 아래 끊임없는 개선을 강조했다. 자동차 산업이 세계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조화’를 자주 언급했다. 1996년 현지 생산 확대를 목표로 ‘비전 2005’를 추진해 미국과 유럽에 공장을 세웠고, 이후 10년 동안 도요타의 해외 판매량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와 일본자동차공업회, 총리 경제전략회의, 일본경영자단체연맹 등 주요 경제 조직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