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글로벌 성장 기반 닦은 오쿠다 히로시 별세
핵심 요약
오쿠다 히로시 전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지난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해외 생산 확대와 프리우스 조기 출시를 이끌어 도요타의 세계화와 친환경차 전환 기반을 마련했다. 통합 게이단렌 초대 회장으로서 소비세율 인상과 외국인 노동력 수용 등 정책 제언에도 나섰다.
도요타자동차의 해외 생산 확대와 경영 체질 개선을 주도한 오쿠다 히로시 전 사장이 지난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도요타는 고인의 사망을 확인했으며 장례식은 유족만 참석한 가운데 치를 예정이다. 그는 1995년 비창업가 출신으로 사장에 올라 30년간 이어진 창업가 가문의 경영을 끝내고 도요타의 세계화에 속도를 냈다.
1932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난 오쿠다 전 사장은 1955년 히토쓰바시대를 졸업한 뒤 도요타자동차판매에 입사했다. 회계부서를 거쳐 필리핀에 파견됐고, 이후 아시아·오세아니아 사업을 총괄했다. 현지에서 게릴라군을 만나기 위해 정글을 횡단하며 연체 자금 회수 협상에 나서는 등 추진력을 보였고, 도요다 쇼이치로의 신임을 얻어 1982년 이사로 승진했다. 1995년 8월 도요타 다쓰로 사장이 병으로 물러나자 후임 사장에 취임했다.
당시 도요타는 일본 시장 점유율과 수익이 함께 줄며 침체를 겪고 있었다. 오쿠다 전 사장은 미국과 유럽, 아시아에 공장을 적극적으로 건설해 해외 생산을 늘리는 한편, 안주하는 조직문화를 ‘대기업병’으로 규정하고 개혁을 추진했다. 1998년 말로 예정됐던 첫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의 출시를 1997년 말로 앞당기며 환경을 차세대 자동차 전략의 핵심에 놓았다. 초기 반응은 크지 않았지만 프리우스는 이후 열성적인 소비층을 확보했고, 하이브리드 기술은 도요타 전 차종으로 확대됐다.
친환경 기술과 주주 친화적 경영, 해외 확장 전략은 도요타가 세계 최대 자동차기업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 판매가 급증하자 미국 자동차 업계가 그의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미·일 자동차 협의 과정에서는 고인을 상대로 한 도청 문제까지 드러났다. 다만 빠른 비용 절감과 해외 팽창이 10년 뒤 품질 문제로 이어졌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는 2002년 통합 게이단렌 초대 회장에 취임했으며, 2003년 장기 비전에서 인구 감소에 대비한 소비세율 인상과 외국인 노동력 수용을 제안하는 등 정책 결정에도 깊이 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