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사명에 엇갈린 정체성…바이오업계 혼선
핵심 요약
유사한 기업명 때문에 투자자와 소비자가 서로 무관한 제약·바이오 회사를 계열사로 오인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삼성제약과 현대바이오 계열 명칭은 실제 지배구조·사업 관계와 다르며 상표 분쟁과 정보 분류 오류도 발생했다. 글로벌 사업에서는 발음과 기억뿐 아니라 상표 등록 가능성과 브랜드 혼동 위험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일리’ 커피를 떠올리고 주식을 샀다가 비만치료제 ‘마운자로’를 출시한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에 투자한 사실을 뒤늦게 안 사례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민음사 박혜진 편집자가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한 일화다. 이름이 비슷해 기업을 잘못 이해하는 혼선은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서도 투자자와 소비자 사이에 반복되고 있다.
삼양식품은 라면을 생산하지만 삼양그룹은 화학·첨단소재와 바이오를 육성하는 별도 기업집단이다. 삼양바이오팜은 항암제, 생분해성 수술용 봉합사, 유전자 전달체 플랫폼 SENS를 개발한다. 그런데도 삼양그룹에 삼양식품의 주가와 실적을 묻는 문의가 들어온다. 삼성제약 역시 삼성그룹과 관계가 없지만 삼성전자·삼성바이오로직스 계열사로 오해받고, 관련 공시와 뉴스가 이들 종목 페이지에 잘못 분류되기도 한다.
삼성그룹은 2015년 ‘삼성제약’ 상표가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며 등록무효심판을 냈으나 특허심판원과 2020년 특허법원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1929년 설립된 삼성제약이 1938년 출범한 삼성그룹보다 먼저 상호를 사용했고, 약 85년간 독자적 식별력을 쌓았다고 판단했다. 현대바이오랜드도 2020년 현대백화점그룹의 SK바이오랜드 인수로 출범한 건강기능식품·화장품 소재 기업인 반면, 현대바이오사이언스는 현대전자에서 출발한 현대IBT가 바이오 중심으로 전환하며 이름을 바꾼 회사다. 두 기업은 지분이나 경영 관계가 없다.
업계에서는 ‘넥스트’, ‘젠’, ‘바이오’, ‘테라퓨틱스’처럼 산업 특성을 드러내는 단어가 반복되면서 유사 사명이 늘어난 것으로 본다.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는 레고케미스트리에서 따온 옛 사명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를 둘러싼 분쟁에서 2023년 대법원이 유명 상표의 희석 가능성을 인정하자 이름을 바꿨다. 미국 애보트도 ‘듀파’와 비슷한 상표를 사용한 인도 제약사와 다퉜고, 인도 봄베이 고등법원은 올해 6월 ‘듀파크리트’ 등록 취소를 명령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발음과 기억의 용이성뿐 아니라 국가별 등록 가능성, 기존 브랜드와의 혼동 위험까지 네이밍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