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쉬굴, 제주 4·3의 역사 현장으로 보존
핵심 요약
제주 4·3 당시 주민 11명이 희생된 다랑쉬굴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됐다. 1992년 발견된 유해와 생활 유품은 민간인 희생을 확인한 물적 증거가 됐다. 파리장서운동의 핵심 인물 장석영 선생을 기리는 칠곡 만서정도 함께 등록 예고됐다.
제주 4·3 당시 주민 11명이 희생된 다랑쉬굴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절차에 들어갔다. 국가유산청은 12일 ‘제주 4·3 다랑쉬굴 은신처와 학살터’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했다. 1992년 발견된 이곳은 오랫동안 증언으로만 전해지던 민간인 희생의 실상을 유해와 생활 유품을 통해 확인한 현장이다.
종달리와 하도리 주민들은 중산간 마을 초토화 작전을 피해 다랑쉬굴에 몸을 숨겼다. 1948년 12월 18일 굴을 찾아낸 토벌대는 주민들이 나오지 않자 입구에 불을 피운 뒤 연기를 안으로 불어넣었다. 굴 안에 있던 주민들은 질식해 숨졌으며, 40여 년이 지난 뒤 여성 3명과 어린이를 포함한 11명의 유해, 솥과 항아리 등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품이 발견됐다.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와 1954년 9월 21일까지 이어진 무력 충돌,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된 사건이다. 1948년 10월 17일 해안선에서 5㎞ 밖에 있는 사람을 이유와 관계없이 총살하겠다는 포고령이 내려졌고, 같은 해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까지 중산간 마을을 겨냥한 초토화 작전이 진행됐다.
다랑쉬굴은 피난처의 원형이 잘 남아 있고 제주 4·3의 참상을 보여주는 물적 증거라는 점에서 학술 가치를 인정받았다. 유해와 유품의 발견은 4·3 진상규명 운동에 힘을 보탠 계기가 됐다. 함께 등록 예고된 ‘칠곡 장석영 가옥 만서정’은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장석영 선생(1851~1926)의 활동을 기억하는 장소다. 장 선생은 1919년 3·1운동 이후 유림이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독립청원서의 초안을 작성했으며, 체포돼 옥고를 치른 뒤에도 항일운동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