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의 그늘에서 형성된 서구의 자유
핵심 요약
서구의 자유 개념은 자유민이 노예의 처지와 자신을 대비하는 과정에서 형성됐다. 아테네의 채무노예제 폐지와 로마의 노예 해방 제도는 자유의 범위를 넓히면서도 노예제를 유지했다. 중세의 구속과 자치 관념은 종교개혁·권리장전·프랑스혁명을 거쳐 근대적 자유로 이어졌다.
서구 문명에서 자유는 노예제와 분리된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노예와 자유민의 처지가 극명하게 갈리던 현실 속에서 구체화됐다. 역사사회학자 올랜도 패터슨 미국 하버드대 존 카울스 사회학 교수는 1991년 출간한 ‘자유의 역설’에서 지배층의 정치·경제적 필요와 기층의 저항에 따라 노예제가 강화되거나 완화되는 동안 자유의 개념도 함께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이 책은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기원전 8~6세기 아테네에서는 빈농이 빚을 갚지 못해 채무 노예가 되거나 국외로 팔리는 일이 흔했다. 전쟁 패배뿐 아니라 공동체 내부에서도 노예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불안이 갈등을 키우자, 기원전 6세기 집정관 솔론은 채무노예제를 폐지했다.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뒤 시민들은 공직자 선출과 민회·재판 참여를 포함한 시민적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전쟁 포로나 외부인을 대상으로 한 노예제는 유지됐고, 시민의 자유를 뒷받침하는 노동은 늘어난 외부인 노예가 담당했다.
로마는 노예 해방을 제도화해 자유의 관념을 더 넓은 층으로 확산시켰다. 수공업과 상공업 등에서 일하던 노예는 주인의 동의를 얻으면 해방될 수 있었고, 해방 뒤에는 옛 주인과 협력하며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해방노예의 자녀에게는 완전한 시민권도 주어졌다. 자유라는 목표가 노동과 충성을 유도하면서 노예 해방은 노예제를 약화하는 동시에 체제를 원활하게 작동시키는 모순적 장치가 됐다.
중세에도 자유를 향한 요구는 여러 계층에서 이어졌다. 기독교의 구속 개념은 원죄를 지닌 인간이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해방된다는 관념을 통해 자유를 보편적 구원의 언어로 바꿨다. 농노는 예속에서 벗어나려 했고, 봉건 영주는 국왕의 간섭을 피하려 했으며, 도시는 영주의 지배를 벗어나 자치권을 요구했다. 이후 16세기 종교개혁은 개인의 신앙과 양심을 부각했고, 17세기 영국 권리장전은 왕권을 의회와 법으로 제한했다. 프랑스혁명 뒤에는 개인의 권리와 민주적 정치 참여를 중심으로 한 근대적 자유가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