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생명과 맺는 관계, 피치니니의 ‘킨십’
핵심 요약
수원시립미술관에서 패트리샤 피치니니의 ‘킨십’ 전시가 낯선 생명과 공감하는 경험을 제시한다. 극사실적 조각들은 혈연과 종을 넘어 돌봄과 책임으로 형성되는 가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시는 AI와 생명공학이 만든 새로운 존재를 인간이 어떤 관계로 받아들일지 질문한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패트리샤 피치니니: 킨십(Kinship)’은 기괴하게 보이는 생명체가 공감의 대상으로 바뀌는 과정을 펼쳐 보인다. 입구의 ‘바쳐진 존재’는 전시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손으로 만질 수 있다. 주름진 이마와 찌푸린 눈, 짧고 부드러운 털을 지닌 존재의 등을 쓰다듬는 경험은 이후 마주할 작품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하는 연결점이 된다.
실리콘과 유리섬유, 실제 머리카락으로 제작된 조각에는 인간과 동물, 식물의 특징이 뒤섞여 있다. 극사실적으로 구현된 낯선 외형은 돌연변이나 진화 과정에서 갈라져 나온 생명을 연상시키지만, 겁먹은 눈빛과 의지하는 몸짓, 서로를 감싸는 손길은 연민과 친밀감을 일으킨다. 핵심 공간인 ‘유대하다’에는 인간과 오랑우탄의 특징을 함께 지닌 ‘킨드레드’를 비롯해 ‘안식처’, ‘연인’, ‘신생 가족’이 배치됐다.
피치니니가 제시하는 가족은 혈연이나 같은 종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서로를 돌보고 책임지는 존재라면 다른 종도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친족과 혈연을 뜻하는 ‘킨십’도 인간과 동물, 자연과 기술,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생명까지 연결하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작가의 관심은 유전자공학이나 인공지능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이 만들어낼 존재와 인간이 맺을 관계에 놓여 있다.
1965년 시에라리온 프리타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호주로 이주한 피치니니는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호주관 대표 작가로 주목받았다. 이후 호주국립미술관과 일본 하라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조각, 사진, 영상, 설치를 넘나들었다. 같은 실리콘을 사용하는 론 뮤익과 비교되지만, 피치니니에게 사실성은 기량을 드러내는 장치가 아니라 낯선 존재와의 연결을 돕는 수단이다. AI와 유전자 편집이 현실이 된 시대에 전시는 새로운 생명을 배척할지, 돌봄의 대상으로 받아들일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