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의 ‘호프’, 살기 가득한 추격극
핵심 요약
‘호프’는 인간과 정체불명의 외계인이 뒤엉킨 156분의 추격극이다. 괴물의 등장을 늦추는 연출이 긴장과 갑작스러운 충격을 만든다. 유머의 엇박자에도 일관된 주제 의식이 영화의 흐름을 지탱한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는 156분 동안 인간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인이 뒤엉키는 추격전을 펼쳐 보인다. 인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달리고, 혼란과 무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에서는 어리석고 괴기스러운 사람들의 생존극이 이어진다. 무능하면서도 살기만큼은 선명한 인물들이 충돌하며 영화의 비정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긴 상영시간에도 이야기의 속도감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영화는 관객을 긴장시키는 괴물의 정체를 쉽게 공개하지 않고, 추격과 대치가 거듭되는 동안 그 실체를 천천히 좁혀 간다. 기다림마저 느슨해질 무렵 괴물이 돌연 모습을 드러내면서, 늦춰 온 공개 자체가 갑작스럽고 낯선 충격으로 이어진다.
괴물을 활용하는 방식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괴물’이 비교적 이른 시점에 존재를 드러냈다면, ‘호프’는 출현을 뒤로 미뤄 관객의 불안과 궁금증을 오래 끌고 간다. 인간과 외계인의 각축,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움직임, 반복되는 위기 상황이 맞물리며 난장판에 가까운 영화적 공간을 구축한다.
웃음을 겨냥한 장면은 의도한 효과에 이르지 못하고, 사건의 긴장과 인물의 이완이 때때로 엇박자를 낸다. 그러나 작품의 중심은 희극적 재미보다 살의가 충만한 세계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충돌에 놓여 있다. 일부 장면의 어긋남에도 영화가 지리멸렬한 상태로 밀려나지 않는 힘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는 명시적 주제 의식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