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되살아난 옛사람들의 여름 쉼법
핵심 요약
옛사람들은 관료의 휴가, 선비의 독서, 농민의 공동 잔치로 여름을 보냈다. ‘해주일록’과 ‘쇄미록’에는 독서와 호미씻이, 냇가 풍류가 구체적으로 남아 있다. 고된 일과를 멈추고 몸과 마음을 돌보는 방식은 계층별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극한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조선시대 일기 ‘쇄미록’과 근대 기록 ‘해주일록’을 통해 옛사람들의 다양한 여름나기 모습이 확인됐다. 관료들은 제도화된 휴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쉬었고, 선비들은 독서와 교류로 무더위를 견뎠다. 농민들은 8월 무렵 농사일의 고비를 넘긴 뒤 호미를 씻어 걸고 마을 사람들과 음식, 노래, 춤을 즐겼다.
남붕(南鵬·1870~1933)이 남긴 ‘해주일록’에는 학문과 공동체 활동을 오간 선비의 여름이 담겼다. 그는 1932년 음력 6월 25일 중복의 극심한 더위에도 새벽부터 ‘주자서절요’를 외우고 명나라 사람의 시를 읽었다. 1922년 음력 6월 23일에는 마을 어른들의 모임에 참석해 호미씻이 잔치를 준비한 이들로부터 술과 안주를 대접받았다.
호미씻이는 마지막 김매기를 끝낸 뒤 호미를 깨끗이 씻어 걸어 두고 하루나 며칠 동안 함께 음식을 나누며 쉬는 공동체 축제였다. 안동을 비롯한 경북 북부에서는 이를 ‘풋굿’이라고도 불렀다. 오희문(吳希文·1539~1613)의 ‘쇄미록’에는 1600년 음력 8월 6일 마을 사람들이 냇가에 모여 북을 치고 노래하며 춤을 춘 장면이 기록돼 있다.
관료에게는 혼례·상례·제사·질병·부모 봉양 등을 위한 특별 휴가인 ‘급가(給暇)’가 운영됐다. 세종은 젊고 재능 있는 문관이 일정 기간 공무를 떠나 학문과 저술에 전념하도록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시행했다. 조선의 ‘쇄미록’에서 근대의 ‘해주일록’까지 이어지는 기록은 관료의 휴가, 선비의 독서, 농민의 공동 잔치처럼 계층에 따라 달랐던 휴식 문화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