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에서 초판본까지, 윤길수의 2만 권
핵심 요약
윤길수는 중학생 때 헌책방에서 시작해 50여 년간 2만 권의 장서를 모았다. 금서로 묶였던 문학을 복사해 읽으며 희귀 초판본 수집의 기초를 다졌다. 영업사원으로 번 돈과 내 집 마련 자금까지 책에 투입해 한국 근현대 문학 자료를 모았다.
1952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윤길수는 50년 넘게 거의 매일 책을 사 모아 2만 권의 장서를 일군 수집가다. 1965년 숙부를 따라 서울 창신동 판자촌으로 온 그는 북아현동의 중학교를 오가며 헌책방에서 문학을 읽었다. 아버지가 준 용돈으로 산 ‘조선현대문학전집’ 1권과 4인 시선집 ‘현대시집’ 1권은 방대한 장서의 출발점이 됐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68년에는 인사동 경문서림에서 정지용과 임화의 책을 찾다가 주인 송해룡에게 쫓겨났다. 월북 작가의 책을 찾는 학생을 경찰이 보낸 단속원으로 오해한 일이었다. 거듭 서점을 드나든 끝에 신뢰를 얻은 그는 정지용·백석·오장환·이용악·김용준의 희귀본을 복사해 읽었고, 훗날 백석의 ‘사슴’을 제외한 해당 초판본을 직접 소장하게 됐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윤길수는 1976년 여의도의 화공 회사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식당에 주방용 세제를 팔러 다니며 냉대를 겪던 시절에도 인사동에서 시를 읽고 책을 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위생 수요가 늘자 정밀기계·중공업·조선소로 산업용 세제 시장을 넓혔고, 전국 출장길마다 고서점을 찾아 수입을 책 구입에 썼다. 30년간 근무한 뒤 전무로 정년을 마쳤다.
가장 큰 선택은 1995년에 찾아왔다. 대구 고서점 신라방에 나온 장서에는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 최남선의 ‘백팔번뇌’, 김영보의 ‘황야에서’, 한용운의 ‘님의 침묵’ 등 1950년 이전 간행본 202권이 포함돼 있었다. 그는 주택청약을 해지하고 내 집 마련을 미룬 채 1100만원에 전량을 샀다. 1992년 모범 장서가상을 받은 데 이어 2006년에는 방송통신대 국문과에 입학하며 평생 이어온 문학 공부를 제도권 교육으로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