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의 무력함 새긴 안중근 유묵 국내 공개
핵심 요약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만국공법불여대포’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됐다. 필적과 장인·지문, 뒷면 묵서를 기존 자료와 비교해 진품임을 확인했다. 2025년 5월 정보를 확보한 뒤 6개월 만인 같은 해 11월 국내 반입을 마쳤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을 앞두고 중국 뤼순감옥에서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가 13일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국내 최초로 공개됐다. ‘국제법이 대포만 못하다’는 뜻의 여덟 글자에는 사형 선고 이후 국제법의 한계를 절감한 안 의사의 비판적 인식과 굽히지 않는 기개가 담겼다. 작품은 1910년 3월 무렵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순국 전 마지막 시기에 남긴 대표작으로 평가됐다.
진위 검증에는 필적과 왼손 장인, 지문을 기존 유묵과 겹쳐 비교하는 방식이 활용됐다. 2019년 이전 보물로 지정된 안중근 유묵 25건에서 장인 자료를 추출해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도 분석에 쓰였다. 글씨에서는 단단하고 힘찬 필세가 확인됐으며, 전통 선비의 서체에 가까우면서도 안 의사의 정신적 기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평가가 나왔다. 작품 뒷면의 묵서에는 하얼빈 의거부터 사형 집행까지의 경과와 소장·표구·보존 과정이 기록돼 진품 판단을 뒷받침했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수행한 정당한 전쟁 행위라며 만국공법에 따른 재판을 요구했다. 일본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살인죄를 적용해 1910년 2월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만국공법은 19세기 국제법 질서를 가리키며 조선에도 널리 알려진 개념이었지만, 실제 국제질서는 제국주의 열강의 힘에 좌우됐다. 유묵은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은 국제법과 무력이 지배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비판한 기록으로 해석된다.
유묵은 뤼순감옥 형무소장 구리하라 사다키치가 처음 소장한 뒤 ‘평문광생 뇌협일인’이라고 기록된 인물에게 넘어가 보존된 것으로 확인됐다. 뒷면에는 ‘적괴’로 추정되는 두 글자를 지운 흔적도 남아 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2025년 5월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의 정보를 확보해 서면 자문과 일본 현지 조사, 심의를 진행했고, 그해 9월 소장자와 매매계약을 맺어 11월 20일 국내로 반입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임시 보관 중이며 향후 내부 검토를 거쳐 관리처가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