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 끊겨도 커진 러시아 한류의 현지 동력
핵심 요약
전쟁과 제재로 한러 교류가 급감했지만 러시아의 한류 기반은 현지에서 확대되고 있다. 고려인과 부랴트인·야쿠트인 등 아시아계 공동체가 콘텐츠 소비와 문화 확산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중국·일본 문화도 성장하는 만큼 현지 아시아계 공동체와의 지속적인 연결이 중요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국과 러시아를 잇던 직항 노선이 사라지고 국제 결제까지 어려워졌지만, 러시아의 한류는 위축되지 않고 현지에서 자생적인 생태계로 확장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기에 자리 잡은 디지털 콘텐츠와 팬덤에 더해 고려인과 아시아계 소수민족이 한국 문화를 소비하고 퍼뜨리는 핵심 축으로 떠올랐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러시아 작가 나데즈다는 BTS와 블랙핑크의 음악을 즐기고 한강·신경숙의 소설을 읽는 한류 팬이다. 최근에는 서울과 K팝을 소재로 한 청소년 소설 ‘서울에서 나를 깨워줘’를 출간했다. 작품 속 부랴트계 소녀 베로니카는 아시아적인 외모로 위축돼 살다가 K팝을 접한 뒤 이를 자신만의 매력으로 받아들인다. 한국식 미감이 러시아 아시아계 청소년의 정체성 표현과 맞닿는 모습을 담은 설정이다.
현지 소비의 저변은 생활 공간에서도 확인된다. K팝 아이돌 포스터와 한글로 꾸민 모스크바의 ‘K팝 카페 떡볶이’에서는 2만원가량의 떡볶이와 7000원짜리 핫도그가 팔리며 팬들이 모인다. 이 식당의 창업자는 고려인이다. 한국과의 인적·경제적 교류가 급감한 상황에서도 현지 수요와 감각을 이해하는 고려인이 콘텐츠와 음식을 꾸준히 공급했고, 부랴트인과 야쿠트인 등 아시아계 주민도 한국식 패션과 미적 표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러시아의 아시아 문화 시장에서는 한국만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한국 웹툰과 함께 중국 웹소설, 일본 애니메이션도 각각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는 ‘아시아 문화’라는 공통 범주 안에서 함께 소비되는 경향이 두드러지지만, 시장이 성장하면 한국·중국·일본 문화의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수 있다. 러시아 한류의 지속성을 높이려면 고려인과 현지 아시아계 공동체를 단순 소비층이 아닌 문화 확산의 주체로 인식하고 연결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