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장의 적대, 정의를 지키는 절제가 필요하다
핵심 요약
정치와 시장을 둘러싼 공론장에서 극단적 언어와 진영 대립이 커지고 있다.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은 충돌하는 정의를 시민 법정과 설득으로 감당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분노가 보복과 독선으로 흐르지 않도록 겸손과 자기 절제가 요구된다.
폭염 속 일상을 짓누르는 피로는 정치와 주식 시장을 둘러싼 공론장에서도 감지된다. 정치권의 막말과 상대 진영을 악으로 규정하는 대립, 기대와 절망이 엇갈리는 시장 과열이 겹치면서 차분한 토론의 자리는 공격과 굴복을 겨냥한 언어로 채워지고 있다. 정의를 내세운 주장들이 충돌하지만, 서로의 정당성을 살피려는 절제는 갈수록 희미해지는 모습이다.
그리스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의 ‘자비로운 여신들’은 정의끼리 맞서는 상황을 다룬다. 오레스테스가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하자, 아폴론은 복수를 정의로 옹호하고 복수의 여신들은 혈육 살해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맞선다. 고대 그리스에서 ‘안티로기아’로 불린 이 대립은 어느 편도 손쉽게 악으로 단정할 수 없는 비극적 충돌을 드러낸다.
아이스킬로스는 이 갈등을 신의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시민 법정의 판단으로 옮긴다. 배심원 표결이 동수로 갈리자 아테나는 마지막 한 표로 오레스테스를 석방하면서도 패배한 복수의 여신들을 추방하지 않는다. 설득 끝에 이들을 도시를 지키는 ‘자비로운 여신들’로 받아들이며, 피의 복수를 법의 질서로 바꾸고 적대의 힘을 공동체를 보호하는 에너지로 전환한다.
예수가 가르친 ‘예’와 ‘아니요’의 분명한 언어도 과장된 맹세보다 삶과 말의 일치를 중시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불의를 향한 분노는 정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절제를 잃으면 응징과 보복, 독선으로 변하기 쉽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과 담담하게 진실을 말하는 용기, 스스로 틀릴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가 있을 때 정의는 상대를 제거하는 폭력이 아니라 공동체를 살리는 질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