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된 커리 카드, 워리어스 왕조의 갈림길
핵심 요약
밀워키가 발목 부상과 수비 약점을 이유로 골든스테이트의 커리 트레이드 제안을 거절했다. 골든스테이트는 2012년 몬타 엘리스를 보내고 커리를 중심으로 왕조를 구축했다. 엘리스는 자신이 남았어도 여러 차례 우승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유지했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스테판 커리의 데뷔 초기에 그를 밀워키 벅스로 보내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던 사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밀워키는 커리의 만성적인 발목 부상과 수비 약점을 우려해 영입을 거절했고, 골든스테이트는 결국 커리 대신 당시 에이스 몬타 엘리스를 내보내는 결정을 내렸다.
커리는 2009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7순위로 골든스테이트에 입단했다. 당시 주전이던 엘리스는 신장 1m91, 커리는 1m88로 모두 공격 성향이 강한 언더사이즈 가드였다. 엘리스는 작은 가드 두 명으로 백코트를 꾸려 승리하기 어렵다며 커리와 함께 뛰는 구상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다만 두 선수 사이에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고 커리도 엘리스를 존중했다.
골든스테이트는 2012년 3월 엘리스를 밀워키로 트레이드하며 커리를 선택했다. 일부 홈 팬들은 이 결정에 거센 야유를 보냈다. 그러나 커리는 이후 클레이 톰슨과 ‘스플래시 브라더스’를 이루고 드레이먼드 그린과 함께 여러 차례 우승을 일궜다. NBA 역대 최고의 3점 슈터로 성장해 현대 농구의 흐름까지 바꾸면서, 당시 선택은 골든스테이트 왕조를 만든 중대한 갈림길이 됐다.
현재 올콘 주립대 단장을 맡은 엘리스는 자신이 남고 커리가 트레이드됐어도 같은 선수들과 여러 차례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는 구단의 당시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도 밝혔다. 밀워키 이적 뒤 2011~2012시즌 21경기에서 평균 17.6득점과 5.9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다음 시즌에는 82경기에 모두 나서 평균 19.2득점과 6.0어시스트를 올렸다. 이후 댈러스 매버릭스와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거쳐 31세에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