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정족산 전등사 권역, 국가 명승 지정 절차 착수
핵심 요약
강화 정족산 전등사 일원이 국가유산 명승 지정 절차에 들어갔다. 삼랑성·전등사·정족산 사고와 고려 가궐, 조선 기록문화의 흔적이 함께 남아 있다. 30일간 의견 수렴과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가 확정된다.
자연 지형과 오랜 역사문화 유산이 함께 남아 있는 ‘강화 정족산 전등사 일원’이 국가유산 명승 지정 절차에 들어갔다. 국가유산청은 10일 정족산 능선과 삼랑성, 전등사, 정족산 사고, 사찰림, 옛길이 어우러진 이 일대를 명승으로 지정할 계획을 예고했다. 세 발 달린 솥을 뒤집은 듯한 산세와 여러 시대의 흔적이 중첩된 역사문화경관이 핵심 가치로 평가됐다.
정족산 능선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삼랑성이 있고, 그 안에 전등사와 조선시대 중요 서적을 보관했던 사고가 자리한다. 임진왜란 뒤 조선 왕실은 춘추관과 강화·태백산·묘향산·오대산의 사고에 조선왕조실록 등을 나눠 보관했다. 전주 사고 실록의 계통을 이은 정족산 사고본은 1천187책이 남아 국보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재위기인 371∼384년에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고려 중기까지의 연혁은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석가여래삼존불을 봉안한 대웅전과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 사자 등에 홈을 내 거울을 꽂도록 만든 명경대는 보물이다. 이 일대에는 국가 불교 의례의 흔적과 이색을 비롯한 여러 문인의 유람 기록도 남아 있다.
고려가 몽골 침입에 맞서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던 시기에는 삼랑성과 신니동에 임시 궁궐인 가궐이 조성됐다. 관련 사실은 1259년 음력 4월 24일자 고려사 기록에 남아 있다. 삼랑성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 160여 명을 물리친 장소이기도 하다. 국가유산청은 30일간 의견을 수렴한 뒤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명승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