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가와 학살 피해 170명 기록…검거는 3건뿐
핵심 요약
가나가와현 문서에는 조선인 170명 사망과 14명 부상이 기록됐지만, 검거는 살인 2건과 상해 1건에 그쳤다. 조선인 관련 범죄로 조사된 14건 중 집단 범죄는 확인되지 않았고, 조선인 대상 살상 사건은 80건이었다. 연구자는 일본 정부의 공식 기록 부재 입장을 비판했으며, 조선인 피해 총수는 여전히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가나가와현에서 조선인 170명이 일본인 군중에게 살해되고 14명이 다친 것으로 일본 당국 문서에 기록됐지만, 관련 사건 중 실제 검거로 이어진 것은 살인 2건과 상해 1건뿐이었다. 일본 정부가 피해 규모를 조사하고도 가해자 처벌을 극도로 제한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자 고토 아마네가 분석한 자료는 1923년 11월 당시 가나가와현 지사 야스코치 아사키치가 내무성 요청으로 작성한 약 50쪽 보고서 ‘선고비수 제22호’다. 보고서에는 조선인 관련 범죄 14건이 적혔고, 그중 9건은 용의자가 일본인 군중에 살해된 것으로 조사됐다. 범죄 내용이 분명한 사례는 절도 4건뿐이었으며, 조직적 범죄나 집단 폭동으로 파악된 사건은 없었다.
반면 조선인을 살해하거나 다치게 한 사건은 80건으로 집계됐다. 가해자가 특정된 사건은 10건에 그쳤고, 피해자 전원은 남성이었다. 이름이 확인된 조선인은 34명이었다. 가나가와현의 관련 사건 검거율은 5.1%로, 도쿄부 97.5%, 사이타마현 100%, 지바현 46.1%보다 낮았다. 보고서는 재일 역사학자 고 강덕상 전 히토쓰바시대 교수가 고서점에서 발견해 2023년 자료집으로 공개했다.
지진 직후 조선인이 습격하거나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한다는 유언비어가 퍼졌지만, 고토는 당시 조사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 범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 전체가 학살을 조직적으로 주도했다는 해석에는 신중하면서도, 정부가 학살 관련 공식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하는 입장을 비판했다. 내무성·사법성·계엄사령부와 지방자치단체, 경찰 등의 조사 보고서가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1923년 9월 1일 규모 7.9 지진으로 10만 명 이상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조선인 피해의 정확한 규모는 여전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