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속 피해자 시선으로 마주한 가해 행위
핵심 요약
서울남부교도소가 VR을 활용해 수형자가 피해자의 공포와 자신의 가해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돕고 있다. 범죄유형별 18개 시나리오가 마련됐으며 VR 체험 뒤에는 전문가 상담이 이어진다. 법무부는 시범운영을 거쳐 전국 11개 교정기관으로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콘텐츠 고도화를 추진한다.
서울남부교도소 심리치료센터에서 스토킹·성범죄 수형자의 가해 인식을 교정하기 위한 가상현실 심리치료가 진행되고 있다. 4일 체험한 스토킹 시나리오에서는 남성이 헤어진 연인의 팔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상황과 분노를 피해 달아나는 여성의 공포가 시야와 음성으로 제시됐다. 장면이 멈춘 뒤에는 감정이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문구와 함께 상대가 가해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묻는 선택지가 나타났다.
수형자가 고른 답변에 따라 공감을 유도하거나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안내가 달라진다. 치료의 중심은 자신의 행동을 제3자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자기객관화다. 자극적인 표현은 줄이고, 범행 당시 품었던 생각과 이를 정당화한 방식이 왜 잘못됐는지를 질문과 답변으로 반복해 살핀다. 센터에서 치료받는 스토킹 사범의 약 90%는 과거 연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러 주로 이별한 연인을 쫓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이용한다.
프로그램에는 성폭력 6종, 스토킹 4종, 아동학대 4종, 가정폭력 4종의 시나리오가 마련됐다. 각 시나리오는 5회차이며 회차별 소요 시간은 약 15분이다. 통상 일주일에 한 차례 진행되고 남부교도소에서는 하루 2~3명이 참여한다. VR 체험은 기존 집단상담과 결합되며, 임상묵 심리치료사는 기기를 벗은 뒤에도 수형자가 느낀 감정과 생각을 상담에서 다시 탐색한다. 잊었던 사건을 마주해 감정이 격해질 수 있어 전문가의 후속 개입도 이어진다.
반응은 수형자마다 달랐다.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며 기기를 곧바로 벗은 사례가 있었고, 치료 뒤 과거 일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며 밤새 잠들지 못한 수형자도 있었다. 일부 고령자는 어지럼증과 구토를 호소했다.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 콘텐츠가 또 다른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개발 과정에서 검토됐다. 법무부는 시범운영 결과와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치료 효과가 우려되는 부작용보다 크다고 판단했으며, 6월까지 시범운영을 마치고 지난달부터 전국 11개 교정기관에서 본격 시행했다. 앞으로 운영 성과를 분석해 범죄유형별 콘텐츠를 보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