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빈자리로 인간을 정의할 수 없다
핵심 요약
AI가 하지 못하는 일로 인간을 정의하면 기술 발전에 따라 인간의 가치도 축소된다. 산업사회의 노동 중심 질서는 학교와 직장에서 사람의 쓸모를 외부 기준으로 평가해 왔다. 아렌트와 케인스의 문제의식은 자동화로 얻은 자유를 의미 있게 사용하는 과제를 드러낸다.
인공지능이 코딩과 번역, 디자인뿐 아니라 연구와 창작, 회의와 e메일 작성까지 맡기 시작하면서 인간에게 끝까지 남을 능력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인간의 쓸모를 AI의 성능으로 판정하고,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일의 목록을 인간의 영역으로 규정한다. AI가 발전할 때마다 인간의 가치가 줄어드는 자기잠식적 구조다.
이러한 관점에는 산업사회가 사람을 일꾼으로 평가해 온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규격화와 표준화, 대량생산을 중시한 공장처럼 학교도 위계와 분업화된 과목을 두고, 배움의 즐거움보다 성적과 상벌을 보상으로 제시했다. 순종과 근면, 표준화된 실행을 높이 평가하는 체계에서는 가치가 개인 안이 아니라 공장과 직장 등 사람의 바깥에 놓인다.
해나 아렌트는 1958년 출간한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을 생존을 위한 노동, 자신보다 오래 남을 것을 만드는 작업, 다른 사람들과 말하고 행동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로 구분했다. 근대사회가 이 세 활동을 소모적 반복인 노동으로 축소하면서, 자동화로 자유를 얻더라도 그 시간을 채울 더 높고 의미 있는 활동을 알지 못하게 됐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대공황기인 1930년 기술 발전이 노동의 새 용도를 찾는 속도보다 빠를 때 생기는 ‘기술적 실업’을 설명했다. 그는 100년 뒤 선진국의 생활수준이 당시의 4배에서 8배에 이르고, 하루 3시간 또는 주 15시간 노동이 경제적 목적을 잃는 문제를 잠시 미룰 수 있다고 봤다. 그가 내다본 2030년을 4년 앞둔 시점에서 핵심 과제는 AI보다 쓸모 있음을 입증하는 일이 아니라, 경제적 근심에서 벗어난 자유를 어떻게 쓰고 유용한 것보다 좋은 것을 선택할지 묻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