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판단이 우선된 직장, 검증 업무는 직원 몫
핵심 요약
직원의 경험보다 AI 답변을 우선하는 직장에서 검증과 반박 업무가 늘고 있다. 낮은 품질의 AI 결과물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중요 업무에서도 검토하지 않는 사례가 확인됐다. AI 활용 범위와 검증 주체, 최종 책임자를 조직 차원에서 분명히 정해야 한다.
직장 안에서 직원의 경험과 판단보다 인공지능(AI)의 답변을 우선시하는 사례가 늘면서 새로운 업무 부담이 생기고 있다. 서울의 중소기업에서 기획 업무를 맡은 김모(35)씨는 시장 분석 보고서를 제출할 때마다 상사가 구글 AI ‘제미나이’에 오류 검토를 맡긴다고 설명했다. 회사 내부 사정과 사업 배경이 빠진 지적에도 수정 요구가 이어져, 김씨는 원자료와 반박 논리로 AI의 오류까지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의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박모(31)씨는 자신의 판단을 AI의 표현으로 바꿔 상사에게 전달한다. 직접 설명하면 주관적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의견도 AI 답변을 캡처해 제시하면 수용되기 때문이다. 10개국 지식 노동자 1250명 조사에서는 30%가 AI 없이 업무하기 어렵다고 답했고, 28%는 자기 판단보다 AI를 더 신뢰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품질이 낮거나 허위로 의심되는 결과물을 사용한 비율은 43%, 중요한 업무에서도 항상 검토하지 않는 비율은 55%였다.
이런 역전 현상은 조직의 예산과 인력, 과거 시행착오, 고객 관계를 함께 살피는 직원의 답변보다 짧은 시간 안에 구조적이고 단정적인 결론을 내놓는 AI가 더 객관적으로 보이는 데서 나타난다. 그러나 거대언어모델은 질문에 담긴 전제를 따라 답을 생성하며 이용자가 기대하는 방향에 맞추는 아첨 성향을 보일 수 있다. 오류를 찾으라는 지시를 받으면 실제 맥락과 관계없이 지적할 내용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어, 개인의 선입견이 객관적 분석처럼 유통될 위험도 커진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맥락과 내용이 부족해 다른 직원이 검증하고 다시 작업해야 하는 AI 결과물은 ‘워크슬롭’으로 불린다. 지난해 미국 근로자 1150명 조사에서 40%가 이를 경험했으며, 처리에는 평균 2시간이 걸렸다. 직원 1만명 규모 기업의 비용은 연간 900만달러, 약 128억원으로 추산됐다. AI가 보조 도구를 넘어 최종 판단 기준이 되면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만큼, 조직은 활용 업무와 품질 검증 담당자, 최종 책임자를 명확히 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