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가속기, HBM 최상위 사양 대신 공급 안정 택한다
핵심 요약
엔비디아와 AMD가 차세대 AI 가속기의 HBM 사양을 공급 여건에 맞춰 조정하고 있다. HBM4E 12단의 생산 난도와 제한된 웨이퍼 생산능력이 사양 다변화의 배경으로 꼽힌다. 공급 부족과 HBM4 수요 확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가격 결정력을 높일 수 있다.
엔비디아와 AMD가 차세대 인공지능 가속기에 탑재할 고대역폭메모리 사양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루빈 울트라’에 7세대 HBM4E 8단이나 6세대 HBM4 8단·12단을 우선 적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올해 상반기까지 기본 설계로 삼았던 HBM4E 12단보다 공급 가능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선택지를 넓힌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주요 고객사에 HBM4E 12단 샘플을 전달해 품질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AMD도 차세대 가속기 ‘MI400’을 HBM4 8단과 12단 모델로 함께 출시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는 지난 5일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고용량 메모리가 특정 작업 환경의 총소유비용을 뚜렷하게 낮추지 못할 경우 고객 수요에 맞춰 용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방침을 내놨다.
사양을 낮추면 성능 저하는 피하기 어렵다. 같은 12단 제품이라도 HBM4는 HBM4E보다 용량과 초당 데이터 전송 대역폭이 작고, 전력 효율과 발열 제어를 포함한 구동 안정성도 낮다. 그러나 2027년까지 D램 공급 부족이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메모리 업체가 HBM 생산에 배정할 웨이퍼 생산능력은 제한돼 있다. 특히 HBM4E 12단은 제조 난도가 높아 검증이 까다롭고 양산 수율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AI 칩 업체들의 이른바 ‘디스펙’ 움직임은 국내 메모리 기업의 가격 협상력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공급 부족이 심해질수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 가격을 결정할 여지가 커지고, 업계에서는 내년까지 공급업체의 가격 결정력이 유지되며 가격도 상당 폭 오를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다. HBM4가 차세대 가속기의 대안으로 부상한 점도 긍정적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HBM4 매출이 전 분기보다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