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매끈한 답변이 가리는 인간의 사유
핵심 요약
AI의 빠르고 매끄러운 답변은 인간의 판단 부담을 덜지만 비판적 사고를 약화할 수 있다. 기술을 이상화하고 모방하면 참자기를 억압하고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소외될 위험이 있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예술과 주체적인 도구 활용이 인간성과 창의성을 지키는 길로 제시된다.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인간에게 인공지능은 미래의 방향과 정답을 묻는 새로운 신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빠른 속도와 정연한 논리, 완성도 높은 문장은 판단의 부담을 덜어주지만, 이용자가 답을 해석하고 의심하는 과정을 생략하게 만들 수 있다. 무력감을 벗어나고 책임을 피하려는 욕구가 강해질수록 AI를 절대적인 도구로 이상화할 위험도 커진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러는 AI를 포함한 디지털 기술을 약인 동시에 독인 ‘파르마콘’으로 규정했다. 기술에 기억과 사유를 맡겨 새로운 진화를 이끌 수도 있지만, 의존이 깊어지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효율과 경쟁력을 앞세워 AI의 매끄러운 방식을 모방하는 과정에서는 혼돈과 불안, 나약함 같은 인간의 내면이 감추거나 제거해야 할 결함으로 취급된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스>가 대량생산 체제에서 부속품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소외를 그렸다면, AI 시대의 소외는 플랫폼 알고리즘 안에서 자신의 마음과 멀어지는 형태로 나타난다. 심리학자 도널드 위니콧이 구분한 ‘가짜자기’와 ‘참자기’의 관점에서는 외부 기준에 맞춘 가면이 내면을 억압하고 공허감을 키운다. AI가 제공하는 가짜온기는 눈 맞춤과 인사, 농담과 응원처럼 체온을 지닌 사람 사이의 연결을 대신하기 어렵다.
인간성을 지키는 실천으로는 완성도보다 자발적 애정에 무게를 둔 아마추어 예술이 제시된다. 투박하고 오류가 있더라도 직접 만들며 불완전함을 마주하는 경험은 참자기와 창의성을 회복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알파고 이후에도 AI로 전략을 연구하면서 독자적인 수를 둔 신진서 9단이 바둑 AI 카타고를 꺾은 사례는 기술의 답을 맹신하기보다 도구로 활용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AI와 어떤 방식으로 공진화할지는 결국 질문하고 판단하는 인간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