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에 새겨진 세계사의 장면들
핵심 요약
기원전 3114년 8월 11일은 메소아메리카 장기력의 전통적 시작일로 여겨진다. 1945년부터 1998년까지 항복 협상과 평화조약, 정치범 탈출, 알카에다 결성, 아라파트의 국빈 방문이 이날 기록됐다. 2003년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창설 54년 만에 유럽 밖 첫 주요 작전으로 아프가니스탄 평화유지군 지휘를 맡았다.
8월 11일은 고대 달력의 기준점부터 전쟁과 평화, 국제 안보 체제의 변화까지 여러 사건이 겹친 날이다. 기원전 3114년 이날은 마야를 비롯한 콜럼버스 이전 메소아메리카 문명들이 사용한 장기력의 전통적인 시작일로 여겨진다. 수천 년 뒤인 1945년에는 연합국이 히로히토 일왕의 지위 유지를 조건으로 내건 일본의 항복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54년 8월 11일에는 프랑스와 공산주의 세력인 베트민이 인도차이나에서 7년 넘게 벌인 전투를 공식적으로 끝내는 평화조약이 체결됐다. 1963년 같은 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아프리카민족회의 소속 정치범 4명이 프리토리아 중앙교도소를 탈출했다. 두 사건은 각각 장기간 이어진 무력 충돌의 종결과 정치적 구금 상태에서의 집단 탈출로 기록됐다.
1988년에는 파키스탄 페샤와르에서 오사마 빈라덴과 아이만 알자와히리, 파들이 참석한 회의를 통해 알카에다가 결성됐다. 10년 뒤인 1998년에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이끌던 야세르 아라파트가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케이프타운에 도착했다. 이는 아라파트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처음으로 국빈 방문한 일정이었다.
2003년 8월 11일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가 아프가니스탄 평화유지군의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창설 54년 만에 유럽 밖에서 수행한 첫 주요 작전이었다. 이날의 기록은 메소아메리카 장기력의 출발점,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항복 협상, 인도차이나의 평화조약,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범 탈출, 알카에다 결성, 아라파트의 국빈 방문, 아프가니스탄 평화유지군 지휘권 이양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