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제국의 출발과 전쟁의 분기점
핵심 요약
8월 5일에는 테튼홀 전투와 윌리엄 월리스 체포 등 유럽사의 주요 사건이 발생했다. 뉴펀들랜드 영유권 선언과 합스부르크·북군의 승리, 러일 평화위원 첫 회동이 이날 이뤄졌다. 1992년 미국 경찰관 4명이 연방 민권 침해 혐의로 기소됐고, 1993년 차드에서는 민간인 64명이 희생됐다.

8월 5일은 잉글랜드를 둘러싼 전쟁과 스코틀랜드 저항사의 중대한 장면이 겹친 날이다. 910년 머시아와 웨섹스 연합군은 테튼홀 전투에서 잉글랜드를 습격한 마지막 대규모 바이킹 군대를 물리쳤다. 이 전투에는 에드워드 왕과 애설레드 백작이 이끄는 세력이 참여했다. 1305년에는 스코틀랜드 저항 지도자 윌리엄 월리스가 글래스고 인근에서 잉글랜드 측에 붙잡혀 재판과 처형을 위해 런던으로 압송됐다.
1583년 험프리 길버트는 뉴펀들랜드가 잉글랜드 왕실의 영토라고 선언했다. 이 조치는 북아메리카 최초의 잉글랜드 식민지 수립이자 대영제국 출발의 계기가 됐다. 1716년 페트로바라딘 전투에서는 사보이의 외젠이 지휘한 합스부르크군이 오스만군을 격파했다. 이 전투는 양측의 대결에서 합스부르크가 거둔 결정적인 승리로 기록됐다.
1864년 미국 남북전쟁의 모빌만 전투에서는 데이비드 패러것 해군 소장이 이끈 북군 해군이 승리했다. 패러것은 전투 중 어뢰의 위험에도 전속력으로 나아가라는 취지의 명령을 내리며 함대를 지휘했다. 1905년에는 러시아와 일본의 평화위원들이 미국 뉴욕주 오이스터베이에 있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자택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20세기 후반의 8월 5일에는 국가기관의 폭력과 민간인 피해가 이어졌다. 1992년 로드니 킹 구타 혐의에서 앞서 무죄 판결을 받은 로스앤젤레스 경찰관 4명이 연방 민권 침해 혐의로 기소됐다. 이듬해인 1993년에는 차드 그닝길림 시장에서 공화국수비대가 민간인 64명을 살해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에서 발생한 이날의 사건들은 전쟁, 식민지 확대, 평화 협상, 공권력의 책임이라는 흐름을 함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