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평 물탱크가 지켜낸 시루섬의 198명
핵심 요약
1972년 집중호우 당시 시루섬 주민 198명이 6평 물탱크 위에서 14시간을 버텼다. 청년들은 노약자와 소녀들을 안쪽에 세우고 팔을 맞물려 주민들을 지켰다. 현재 출렁다리와 기념 공간은 수몰된 섬에 남은 연대와 희생의 기억을 전한다.
섭씨 37도의 폭염이 이어진 지난 3일, 충북 단양읍 증도리의 시루섬 출렁다리 아래로 남한강이 잔잔하게 흘렀다. 보랏빛 철골 구조물 너머로 보이는 시루섬은 현재 잡목이 뒤덮인 작은 섬이지만, 54년 전에는 44가구 250여 명이 살던 마을이었다. 다리 입구의 ‘시루섬의 기적’ 안내판은 이 평온한 풍경에 남은 참사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1972년 8월 19일 태풍 베티가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단양에는 하루 407.5㎜의 폭우가 내렸다. 상류의 상진대교가 무너지고 남한강 수위가 치솟자 주민들은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던 높이 6m, 지름 5m의 콘크리트 물탱크로 피했다. 물탱크 위 철판은 6평, 약 19.8㎡에 불과했지만 주민 198명이 올라섰다. 청년들은 가장자리에서 팔을 맞물려 울타리를 만들고 노약자와 누에를 치러 온 소녀들을 안쪽에 세웠다.
흙탕물이 물탱크 턱밑까지 차오른 가운데 주민들은 거센 비바람을 견디며 한 사람도 쓰러지지 않도록 서로를 붙들었다. 당시 33세였던 최옥희 씨는 생후 100일이 갓 지난 아기를 품고 있었으나, 밀집한 사람들의 무게 속에서 아이를 잃었다. 최 씨는 주변 주민들이 동요할 것을 염려해 울음을 삼켰다. 주민들은 이튿날 새벽 4시 구조선이 도착하고 물이 빠질 때까지 14시간 동안 물탱크 위를 지켰다.
1985년 충주댐 건설로 당시의 물탱크는 물속에 잠겼고 시루섬 대부분도 수몰됐다. 대신 새로 놓인 출렁다리와 생태탐방교, 기념 공간이 그날의 흔적과 주민들의 선택을 전하고 있다. 다리 한가운데서는 남한강의 푸른 물빛과 건너편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강 풍경과 함께 남은 시루섬의 기억은 극한의 재난 속에서 노약자를 보호하고 공동체를 지켜낸 연대와 희생의 의미를 보여준다.